▲ 김문식 울산항만물류협회장

타이타닉호는 1911년 건조된 대형 호화여객선이다. 총톤수가 4만600톤이 넘고 길이가 260m나 됐다. 그러나 영국 사우스헴스턴을 떠나 뉴욕으로 처녀 항해하던 이 배는 부유빙산에 충돌하는 바람에 침몰하고 말았다. 1912년 4월14일 밤 11시가 넘어서 일어난 이 사고로 무려 1513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 사상 최대 해난사고에서 살아난 사람은 659명이었는데 그 대부분은 어린이와 노약, 부녀자들이었다. 선장을 포함한 승무원들이 배와 운명을 함께한 장엄한 모습은 타이타닉호의 최후라는 영화로도 널리 소개되었다.

선장은 배의 책임을 지는 사람이다. 승무원과 여객 화물에 대해 그는 공법상, 사법상 직무와 권한을 갖는다. 그는 필요할 때 해원은 물론 여객에 대해서도 지휘, 명령을 할 수 있으며 심지어 배의 안전을 위해선 징계권과 강제조치권도 갖는다. 20톤 이상 배의 선장은 사법 경찰관으로서 직무를 부여받으며, 시체수장권까지 갖는다.

그런 엄청난 권리와 책임이 있는 만큼 그는 배가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항해를 성취해야 될 의무가 있으며, 여객이 전부 내릴때까지 절대로 배에서 떠나지 못하게 되어있다. 그래서 대부분 선장은 조난때 승객들과 승무원을 우선 대피시키고 자신은 배와 함께 최후를 맞곤한다. 1993년도 서해 훼리호 조난 사고와 함께 수많은 여객이 희생된 조난 참사속에 백은수 선장과 승무원은 주검으로 발견되었다. 자신의 배와 함께 최후를 맞이한 것이다.

3년전 인천항을 떠나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가는 학생이 대다수인 여객선 세월호가 진도 해역에서 침몰해 수백명의 사망 실종자가 발생한 대형참사는 탑승객 476명 중 172명만이 생존했고 300여명이 넘는 사망실종자가 발생했다.

필자는 최근 세월호 인양작업에 참여하여 자항선(잠수바지선)에 세월호를 인양하여 목포항에 접안후 자항선(도쿠와이드)에 육상 하역작업을 우여곡절 끝에 하역을 하여 육지 거치대에 하역을 완료하였다. 침몰된 상태의 모습 그대로 인양되어 세월호가 옆으로 누운 상태로 하역을 마쳤다.

하역작업은 생각보다 쉽지않아 문제가 발생하였고 설계하역용역업체 영국의 ALE사의 선진기술과 노련한 기술력에 원하는 방향으로 하역은 못했지만 하역을 마칠 수 있어 다행이다. 밤을 세워 하역 준비를 하여 참여한 모든 분께 감사드린다.

세월호의 침몰에 대하여 몇가지 의문점이 있는데 첫째, 화물은 정확히 몇톤을 실었나? 둘째, 세월호 선장과 승무원은 세월호 여객에게 탈출의 기회를 포기한 이유가 무엇인가? 셋째, 선장과 승무원이 배를 포기하고 먼저 도망친 이유가 무엇인가? 넷째, 침몰 사고중 선장은 해운사의 책임자로부터 어떤 지시를 받았는가? 다섯째, 사고순간 운항을 지휘한 사람은 입사 4개월째인 3등 항해사에게 맡기고 선장은 조타실을 비우고 무엇을 하였는가? 등 다섯가지만 밝혀져도 사고의 원인은 무엇인지 밝혀내고 다시는 이러한 후진국형 참사가 일어나지 않기를 기원한다.

필자는 세월에 하역에 참여하면서 세월호 공선 무게 7000톤과 선박의 화물무게를 어림잡아 7000톤으로 보았을 때 1만4000톤이라는 설계를 믿고 1만6000톤을 들어 올릴 수 있는 준비가 되었으나 들지 못하여 하역에 위기가 왔으나, 기종이 다른 장비를 추가 투입하여 하역을 마쳤다. 세월호 중량을 모르고 사고없이 하역할 수 있다는 것이 하역에 참여한 모든분께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꼭 원인을 밝혀서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않도록 하는 바람이다.

김문식 울산항만물류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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