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나무홍양원作 - 절제된 감정, 추상적이고도 강렬한 고요를 나타내기엔 흑백사진이 제격이다. 숱한 시련을 견뎌낸 한그루 소나무. 고난의 세월 속에서도 이 땅과 자식을 지켜낸 우리 아버지의 또다른 얼굴이다.

일생을 농사꾼으로 고향땅 지켰던 아버지
세월을 이기지 못하고 마지막 가실 때조차
당신의 자랑이던 경운기를 타고 논 한바퀴
피와 땀 새겨진 들판 가슴가득 담으셨을듯

아버지가 지난 추석 때 경운기에서 낙상했다. 병원 가는 것을 그 무엇보다 싫어했던 아버지였지만 이번만큼은 어쩔 도리가 없었다. 119구급차와 앰블런스를 번갈아 타고 병원수술대에 올라 조각난 다리뼈를 의사한테 맡겨야했다.

병원에서 여러 복잡한 과정을 겪은 아버지는 두 달 후 다리에 철심을 박은 채 무사히(?) 집으로 돌아오셨다. 그토록 소원하던 집에 오셔서 침대생활을 하시고 보조기구에 의지해 서툰 걸음을 옮기곤 하셨다.

이제 아버지가 할 수 있는 일들은 아주 적어졌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아버지가 병원가기 전과 후의 생활은 완전히 달라졌다. 물론 몇 해 전부터 힘에 부친다며 농사와 그 외 일들을 조금씩 줄이긴 했다. 하지만 지금은 아버지가 당신의 손으로는 그 무엇도 할 수 없다고 받아들이는 마음의 크기가 훨씬 작아졌다는 것이 더 깊게 자리했다.

인물 좋고 머리도 비상했으며 키까지 훤칠했던 아버지는 요새 말로 꽃미남이었다. 하고 싶은 공부를 다 마치지 못하고 할아버지의 말씀대로 농사꾼이 되었고 지금껏 고향땅을 지키고 사셨다. 부모님 모시느라, 동생 공부 시키느라, 자식들 키우느라 아버지는 그 누구보다 부지런히 새벽길을 열었으며 고단한 저녁을 이어갔다. 그런 아버지의 몸 여기저기에 구멍이 나기 시작했다. 침을 맞고 주사를 맞아도 쉽사리 낫지 않는 건, 이버지의 등이 자꾸만 기울기 때문이다.

지팡이를 짚고 한발한발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내딛는 아버지. 세월을 이기지 못한 몸 이곳저곳은 흠집이 나기 시작했고 그 몸 사이로 휑한 찬바람만 드나들고 있다.

아버지는 침대에 몸을 맡기고 쪽잠이 드셨다. 나는 아버지의 흔적을 잠시 더듬었다.

평생 땅만 팠던 아버지는 남의 집 외제차보다 당신의 손발이 되어주는 경운기를 더 자랑스러워했다. 새벽 일찍 힘찬 경운기소리를 내며 논과 밭을 오가던 아버지의 부재로 경운기는 나날이 기운을 잃어갔다. 또 그 많은 쇠꼴과 참깻단을 져 나르던 오래된 지게도 창고 한 켠에서 낡아간다.

저 지게에 아버지란 자리의 무게만큼 높고 많은 짐을 짊어지고 가파른 산길을 수도 없이 오르고 내렸을 고단한 삶. 아버지가 다시 건강해져 지게를 질 수 있을지 모르지만 덩그러니 서 있는 것이 아버지를 닮아가는 것 같아 애잔하고 아프다.

한때는 제법 많은 소를 키웠던 외양간도 이제는 들고양이들 몇 마리만 드나들고 거미줄만 촘촘할 뿐이다. 점점 비어가는 것들이, 사라지는 것들이 애달픈 봄날이다. 2016년 3월10일.

작년 봄, 4월6일 정오쯤 아버지는 76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나셨다. 돌아오는 봄이 되면 다시 어디든 마음대로 다닐 수 있으리라 기대했지만 그 간절한 바람은 바람으로만 끝났다. 아버지는 평생을 사신 집에서, 오십칠 년을 함께 한 엄마 곁에서 조용히 눈을 감으셨다.

퇴원 후 주로 침대에서 생활하셨던 아버지는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죽음을 맞을 준비는 하셨을까. 유언은 남기고 싶어하셨을까. 마지막 가는 길 무엇이 가장 아쉬웠을까.

작은오빠 말이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일주일 전쯤 아버지가 불편한 다리에 온 힘을 모아 경운기를 타고 논 한 바퀴를 천천히 돌고 왔다는 말을 엄마한테 들었다고. 저녁에 안부 전화를 넣으니 엄마가 “오늘 너그 아부지 갱운기 타고 논에 갔다 오시더라 그러더니 피곤한가 일찍 주무신다” 하더라 했다. 작은오빠는 ‘아… 이제 아버지가 멀리 떠나실 준비하시는구나’하고 그때의 먹먹한 심정을 전했다.

아버지의 피와 땀이 오롯이 새겨진 들판을 마지막으로 눈과 마음에 담고 가고 싶으셨을 것이다. 봄이면 모내기를 하고 가을이면 추수를 하고 마늘을 심던 논. 아버지의 세월을 함께 했던 그 땅을 가슴 가득 품고 가고 싶으셨을 것이다.

할아버지가 물려주신 땅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던 아버지는 땅 한 뙈기 팔아먹지 않은 것을 항상 자식들에게 당당하게 말씀하시곤 했다.

유채꽃과 벚꽃이 너무 화려해서 차라리 슬펐던 봄날, 아버지는 많은 사람들의 헛헛한 배웅을 받으며 이승에서의 삶을 마감하셨다. 아버지를 보내는 마지막날 아버지의 유골과 영정사진 앞에 나는 큰 절을 올렸다.

“아버지 그 먼 곳에서는 더 행복하셔야 합니다.”

▲ 홍양원씨

■ 홍양원씨는
·한국사진작가협회 울산지회장 역임
·대한민국사진대전 심사위원 및 운영위원 역임
·울산흑백연구회 창립 및 초대회장 역임
·한국사진대전·울산시사진대전 초대작가, 개인전 3회
·대한민국사진대전 우수상 및 특선

 

 

 

 

▲ 서경씨

■ 서경씨는
·경남 남해 출생
·2012년 울산산업문화축제 문학상
시 부문 최우수상 수상
·2013년 신라문학대상 시 부문 당선
·(사)울산작가회의 사무국장·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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