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명 정치부장

오늘은 24절기 중 아홉 번째 절기인 망종(芒種)이다. 芒(망)자는 보리나 벼 따위의 까끄라기가 있는 곡식을 뜻하는데, 망종을 전후해 보리를 베고 벼를 심는다. 우리 속담에 ‘보리는 망종 전에 베라’는 말이 있다. 망종 전에 논보리를 모두 베야 그 논에 모를 심을 수 있기 때문이다.

보리타작을 하다보면 보리 까끄라기가 몸속이나 입 속으로 들어가 끄집어내려고 할 수록 더 깊이 들어가는 고통을 맛보게 된다. 그래서 필자는 어렸을 적 보리타작 하는 날은 아예 학교에서 늦게 오거나 도망가버리기도 했다. ‘보리타작 할 때는 죽은 송장도 일어나 거든다’고 하는데 그렇게 코빼기도 안 보였으니 부모가 얼마나 한심하게 생각했을까 지금 생각하면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든다.

망종은 이처럼 고생스럽고 고통스런 최대의 농번기이지만 그 높고 험난한 보릿고개로부터 해방되는 날이기도 했다. 1960년대까지만 해도 우리 국민들은 4~5월 동안 눈물나는 보릿고개를 넘어야 했다. 지난 가을 수확한 곡식은 다 떨어지고 보리는 아직 여물지 않아 나무껍질이나 풀뿌리를 먹으며 연명하다 보니 소화가 잘 안돼 볼일을 볼 때 항문이 찢어져 피가 나오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그래서 ‘똥구멍이 찢어지게 가난하다’는 말도 생겼다.

 

보리고개 밑에서/아이가 울고 있다/아이가 흘리는 눈물 속에/할머니가 울고 있는 것이 보인다/할아버지가 울고 있다…한없이 높아서 많은 사람이 울며 갔다/굶으며 넘었다/얼마나한 사람은 죽어서 못 넘었다/코리어의 보리고개,/안 넘을 수 없는 운명의 해발 구천 미터…‘보릿고개’(황금찬)

보리밭은 마을 연애사건의 단골장소이기도 했다. 행여나 젊은 남여가 보리밭에서 함께 나오는 장면이 목격되면 다음날 그 소문은 코흘리개 아이들까지 알고 있었다. 그러면 당사자들은 부끄러워 몇날며칠 밖에 나오질 못했다. 요즘에는 매년 5월 청춘남녀들이 떼를 지어 고창 등 전국 각지의 청보리밭으로 몰려든다. 보릿고개는 보릿고개일 뿐 예나 지금이나 보리밭은 청춘의 가슴을 뛰게하는 묘한 매력이 있는 모양이다. 보리도 푸르고 청춘도 푸르기 때문일까. 이재명 정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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