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은경 울산발전연구원 문화재센터장

문화재를 다루다보면 가치와 품격이라는 두 낱말에서 느껴지는 애매한 혼란에 종종 빠진다. 우리 삶과 밀접한 집자리나 생활유적에서 출토되는 토기나 도구, 장신구는 가치라는 의미에 더 닿아 있다. 그러다가 같은 시기임에도 전혀 다른 성격의 유구인 무덤이나 사찰 등을 조사해보면 위세를 한눈에 느낄 수 있는 유물들도 출토되곤 한다. 물론 지금도 품격이 다른 여러 문화를 동시에 접하며 살아가기에 격차의 공존이 그닥 어색하지는 않다. 그러면 이 두 문화적 요소를 두고 우리는 과연 그 높낮이와 품격을 논할 수 있을까.

십여 년 전 삼국시대 생활유적이 대규모로 발굴조사된 인근의 ‘기장 가동유적’에서는 이 시기의 일반적인 토기와는 다른 모양의 토기(사진)가 한 점 출토되었다. 이 시기의 생활토기 모양은 밑이 둥글넓적하며 몸통이 둥글고 입이 넓은 것이 특징이다. 그런데 이 토기는 아래쪽은 다른 일반적인 토기들과 유사하게 만들고 위쪽으로는 길쭉한 원통을 하나 얹어 놓은 것 같은 형상이다. 입구 부분 끝단 양쪽에는 동그랗게 구멍이 두 개 뚫려 있었다. 크기는 겨우 24.3cm.

▲ 장경호, 가동유적, 24.3cm ‘고고학으로 본 부산의 역사’

상상이란 얼마나 즐거운가. 일반적이지 않은 토기 한 점으로 온갖 고민과 상상력을 동원해 당시 사람들의 삶 속으로 슬며시 들어가 볼 수도 있다니. 입구에 구멍을 양쪽으로 뚫은 것을 보면 끈을 끼워서 사용한 것은 분명하다. 아래쪽이 넓고 둥근 것을 보면 뭔지는 모르지만 내용물을 더 많이 담고자 했던 듯하다. 천년이 넘도록 땅에 묻혀 있던 토기가 세상에 나올 때는 조각조각 깨진 상태가 많다. 씻어서 붙이고 모양을 잡고 촬영하고 고민하고 기록을 하다보면 유물은 당시의 가치를 넘어 이 시대의 품격으로 변신한다. 특이한 토기 한 점이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역사를 찾아가는 일에 얼마나 중요한 열쇠가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과연 이 토기를 두고 가치는 있을지 몰라도 품격은 없다고 누가 감히 말할 수 있겠는가.

배은경 울산발전연구원 문화재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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