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천 국립합창단 예술감독 겸 상임지휘자·합창지휘박사

음악은 우리의 삶에 있어서 떼려야 뗄 수 없을만큼 밀접하다. 우리는 세상에 태어나기 전부터 음악을 듣고 음악에 반응한다. 태중에서 어떤 음악을 들었는지에 따라 개인의 정서와 성격 형성에 큰 영향이 있다는 사실은 이미 여러 경로를 통하여 밝혀진 바 있다. 그래서 태교음악시장이 활성화 돼 있다.

태교음악으로 시작된 음악교육은 영유아기에도 계속된다. 유아교육기관들은 한결같이 음악 듣고 반응하기, 노래 부르기, 악기 연주하기 등을 가르친다. 초등학교부터는 본격적으로 악기(피아노, 혹은 각종 관현악기)를 배우기도 한다. 학년이 높아지면 합창반이나 합주반을 통해 다른 사람과 함께 음악을 즐기는 법도 배워나간다. 중·고교에 진학해도 크게 변하지 않는다. 이 때쯤 개인적 취향에 따라 적극적으로 악기나 성악을 배우기도 한다.

우리는 성장해가면서 ‘듣는 음악’이나 ‘하는 음악’으로 약간씩 취향이 달라지긴 하지만 계속적으로 음악 속에 살아가게 된다.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인이 되어서는 삶의 질이 좋아질수록 각종 음악회에 참여하는 적극적인 감상자가 되기도 한다. 특히 종교생활을 하게 되면 어떤 종교든 음악은 거의 생활화 되어 있다.

인간이 삶을 마감하면 장례식에서도 역시 음악과 함께 하게 된다. 장례절차가 음악으로 시작하여 음악으로 마치기 때문이다. 죽은 자를 위하여 산자들이 레퀴엠을 부르게 되는데 세상의 고통에서 벗어나 ‘영원한 안식을 취하게 하소서’라는 음악을 들으며 무덤 속에 눕게 된다. 우리의 태생(엄마의 태)부터 무덤에 누울 때까지 아니 무덤에 누워서도 음악의 위로를 받는다.

우리는 인생의 전 과정이 음악을 들으며 태어나고 음악을 들으며 마감하게 된다는 것을 부정할 수가 없다. 그렇다면 영면하여 후손들이 들려주는 위로의 음악을 들을 때 그들을 이해하고 복을 빌어 줄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든다. 인생의 전 순간을 음악과 함께 해왔기에 음악으로 산자와 죽은자가 교감을 형성할 수 있을 것이란 상상을 해본다.

구천 국립합창단 예술감독 겸 상임지휘자·합창지휘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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