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한 마리, 눈을 비비고 입을 훔치는 것이 날카로운 고요를 벼리어내니 톱날을 뺀 발톱은 얼마나 부드러운 연장이냐

가느다란 떨림이 가르랑거리는 목덜미를 넘어서니 비어있으면서 꽉 차 있는 어떤 고요가 고양이의 발톱을 연장으로 삼은 것이냐

타지 않는 형상을 배운 어떤 고요가 천만 번 움직여도 보이지 않는 내 마음의 발톱과 교감하는 것이며 간섭하는 것이냐

-중략-

누구 입속에 들어있는 싱싱한 물고기냐 누구 눈 속에 들어있는 싱싱한 원앙이냐

▲ 엄계옥 시인

천지만물은 시인의 손의 빌어 말을 하고, 시인은 눈앞에 있는 모든 사물을 마음 밭을 갈 쟁기로 대한다. 이번엔 옛 그림이다. 그림은 그리움의 다른 말이다. 조선시대 이암이 그린 병풍 두 폭이 그리움의 실타래다. 모란과 까치와 개와 고양이가 서로 짝을 이루어 원앙이 되었다. 옛 그림 속 모란과 매화는 꽃 중의 왕이요 향기중의 으뜸이다. 고양이는 칠십 늙은이를, 고목은 수명장수를, 참새와 까치는 기쁨을 상징한다. ‘모란 꽃그늘에 기대어 천만년 피고 지’자던 사람은 곁에 없다. 소리는 없고 물체만 남은 평화스런 화폭에 재가 되지 않은 형상은 생채기로 남았다. 고요하게 그림을 들여다보다 별리에 날카롭게 베인 상처가 비려 싱싱하게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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