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한때 물처럼 맑다고 생각했다
물로 집 한 채 지었거나
물의 집이라는 생각도 가져 보았다.
그런 나를 비추자 물빛이 흐려졌다.
내가 지은 집은 지는 해로 지은 것이었다.
고인 물을 막은 것에 불과했다.
내가 흐르는 물자리였으면
새 몇 마리 새 자리를 놓았을 것이다.
갑자기 눈물이 솟구치는 것을 보면
눈물로 지은 집 한 채가 부서졌고,
눈물도 거짓으로 흘릴 때가 많다고 생각했다.
내가 누운 집이 두꺼비 집보다 못하는 것을 알았다.
내가 깊다는 생각은 지우기로 했다.
물은 엎드려 흐르는 것인데
내가 지은 집은 굽이 높았다.

▲ 엄계옥 시인

우리 몸은 물의 집이다. 피와 땀과 눈물로 이루어졌으니 그럴 만도 하다. 이상이 거울을 통해 자신을 반추하였듯 시인은 몸 안에 고인 눈물(학문)의 깊이를 우물 삼아 자신을 반추한다. 내면의 우물은 혼자서만 볼 수 있다. 깊어서 맑고 투명한 줄 알았는데 새 몇 마리 앉아 목축일 물도 되지 않는다고 고백한다. 투명한 눈물 속에도 선과 악이 있다는 반성에 이른다. 눈물은 가두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방류해야 한다. 몸 안에 물기가 많으면 깊어지는 게 아니라 흐려지기 때문이다. 눈물(학문)만큼 힘이 센 것도 없다. 눈물 한 방울이 사람을 얼어붙게도 만드니. ‘내가 깊다는 생각은 지우기로.’에 이르러 자성(自省)이 내면을 비추는 거울임을 알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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