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 차바가 울산을 휩쓸고 간 지도 7개월을 넘어서고 있다. 피해복구사업을 통해 겉으로 드러난 태풍의 상처는 어느 정도 수습됐지만 피해 주민들의 가슴에 새겨진 상흔은 여전히 아물지 않고 있다. 600억원이 넘는 재산피해를 본 울산 중구 태화·우정시장을 비롯한 인근지역 주민들로서는 더욱 그렇다. 악몽과도 같은 순간이었지만 제대로 된 태풍 피해 원인규명과 보상, 재발방지대책을 기대하며 견딜 수 있었다. 그런 주민들이 주요 원인제공자로 지목하고 있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태풍피해 원인 규명을 위해 의뢰한 용역 결과를 놓고 또 한번의 큰 상처를 받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LH가 지역 실정에 맞지 않는 빗물 저수조를 설치해 피해를 키웠다는게 주민들의 입장이지만 ‘LH측에 잘못이 없다’는 방향으로 용역결과가 나올 것으로 관측되고 있기 때문이다.

LH는 오는 19일 한국방재학회가 태풍 차바 침수피해 원인분석 및 혁신도시 개발사업과의 상관관계 분석 연구 용역의 결과를 발표한다고 14일 밝혔다. 한국방재학회는 당초 지난 달 말 용역결과를 발표할 예정이었지만 학회 내·외부 심의과정과 자문, 수정작업을 이유로 연기했다. LH와 한국방재학회는 이 과정에서 일부 주민들에게 용역 중간결과 일부를 공개하면서 태풍 차바가 500년 빈도를 상회해 불가항력이었고, 중구청과 울산시의 우수관거 관리 부실 등이 침수피해 원인이라고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피해주민들의 반발이 즉각 이어지고 있다. 태화·우정·유곡로 재난방지·보상대책 위원회는 총력 투쟁을 예고했다. 19일 용역 최종 결과 발표에 따라 20일 울산시청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용역결과 공식발표에 대한 공식입장을 표명한 뒤 항의집회를 열 계획이다. 반면 LH 측은 “아직 한국방재학회로부터 최종 용역 결과를 받지 못했다”며 “관련법에 따라 50년 빈도의 홍수를 기준으로 설치한 저류지가 실제로 그 역할을 했는지 등에 대한 결과 발표가 나올 것으로 보고 있다”는 입장이다.

차바로 인한 수재가 불가항력적인 것이었는지, 인재(人災)라면 어느 주체에 얼마나 책임이 있는지 객관적으로 책임 소재를 명확히 밝히기 위해서 실시한 용역이다. 과학적인 원인 분석을 통한 재해예방의 목적도 있다. 그렇지만 조사 결과를 당사자들이 수용하지 못한다면 또 다른 분란의 단초만 제공할 뿐이다. 19일 발표될 결과가 태풍 차바 피해를 둘러싼 수많은 논란과 의혹을 말끔히 해소함과 동시에 종지부를 찍을 수 있는 객관적이며 정확하고 과학적인 연구가 담보된 것이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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