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억산(하)

▲ 대비사 이무기의 전설을 뒷받침하듯 억산 정상표지석 주변에는 온통 깨어진 돌 조각들이 널브러져 있다.

대비사 주지스님과 수도하던 상좌
알고보니 이무기로 매일밤 대비못서 수영
스님에게 본모습 들키자 도망가면서
내리친 꼬리에 산봉우리 두갈래로 갈라져

전설 뒷받침하듯 억산 주변에
높이 70여m 바위 위에 깨진 자갈 천지

대비골 아래 시원한 계곡따라 걷다보면
통도사의 말사인 석골사에 도착
아기자기한 꽃마당에 북카페도 있어

청도군 금남면에 있는 억산(944m)은 기이하게도 산꼭대기가 두 갈래로 갈라져 있다. 행정구역상 청도군 금천면사무소에서 동북쪽으로 4㎞ 정도의 거리에 있는 곳으로 청도 박곡을 지나 대비사를 거쳐 계곡을 따라 오를 수 있고, 석골사 쪽에서는 대비골을 따라 팔풍재(대비사로 넘어가는 길목)에서 왼쪽으로 너덜길을 따라 20여 분 올라도 된다. 두 개의 산꼭대기에 얽힌 사연은 억산과 그 아래 대비사의 전설 속에서 찾을 수 있다.

그 옛날 억산 아래 대비사에 주지스님과 상좌가 함께 기거하며 수도에 정진하고 있었다. 하루는 스님이 자다가 일어나 보니 옆에 자는 상좌의 몸이 싸늘했다. 이튿날 역시 자다가 일어나 보니 상좌가 어디를 나갔다가 들어오는 것을 봤다. 스님이 “어디 갔다 오느냐?”고 묻자 “변소에 갔다 오는 길입니다”하고는 이불 속으로 들어가는데 몸이 역시 차가워 이상하게 여겼다. 이튿날 스님이 자는 척하고 있으니 상좌가 가만히 일어나 스님 코에 귀를 갖다 대는 것이었다. 스님이 일부러 코를 골며 자는 척 하였더니 상좌는 옷을 주섬주섬 걸쳐 입고 밖으로 나가는 것이었다. 스님이 뒤를 밟기 시작했는데, 억산 아래 있는 대비못(박곡지)에 이르자 상좌가 옷을 훌훌 벗고 물에 뛰어 들어가는 것이었다.

▲ 석골사 경관 . 오래전부터 수도처로 이름난 사찰로 산사 마당은 작은 꽃과 화분으로 아기자기하게 꾸며져 있다.

그러자 못의 물이 쫙 갈라지고 상좌가 이무기로 변해서 못 안을 오가며 잠시 수영을 한 후 다시 옷을 입고 산을 오르는 것이었다. 산 능선을 넘어 운문사 쪽으로 급경사 진 곳(속칭 이무기못안)에 이르자 상좌는 또다시 웃옷을 벗더니 커다란 빗자루로 돌을 쓸어내리는 것이 아닌가. 신기하게도 상좌가 비질을 하자 크고 작은 돌들이 가랑잎처럼 쓸려 내려가는 것이었다.

▲ 대비골 아래 갈지(之)모양의 등로를 6~7분정도 내려오면 물길이 있는 계곡에 도착한다. 군데군데 반석과 소(沼)가 어우러져 여름철 물놀이 장소로 적격이고, 적당히 하늘을 가린 나무들로 산행하기가 좋다.

스님은 눈앞에 펼쳐지는 놀라운 광경에 큰 소리로 “상좌야 거기서 무얼 하느냐”하고 묻고 말았다. 이에 놀란 상좌가 뒤돌아서 스님을 보고 “1년만 있으면 천년을 채워 용이 될 수 있는데, 아 억울하다”며 크게 탄식했다. 이어 갑자기 이무기로 변해 하늘로 도망가면서 꼬리 부분으로 억산 봉우리를 내리쳐 70여m나 되는 산봉우리가 두 갈래로 갈라졌다고 한다.

억산은 ‘수많은 하늘과 땅과 그리고 우주’라는 의미의 억만건곤(億萬乾坤)에서 유래된 것으로 ‘하늘과 땅 사이의 수많은 명산 가운데 명산’이라는 뜻으로 해석된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필자는 억산은 천년을 기다리며 용(龍)이 되길 소망했던 이무기가 큰스님의 인기척에 놀라 도망가며 탄식을 하여 몸부림을 친 억울한 산이었다고 부르고 싶다. 이 같은 전설을 뒷받침이라도 하듯이 억산 주변에는 깨어진 작은 돌과 자갈들이 수없이 많이 널브러져 있고, 높이가 70여m나 되는 바위의 위용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억산 정상에서 시(詩) 한 수 읊어 본 뒤 팔풍재 방향으로 발길을 돌린다.

억산(億山)/진희영

이무기 한이 서린 억산(億山)
천년 소망 가슴깊이 품은 채
밤마다 이무기로 둔갑하여
억산 상봉서 용(龍)이 되길 소망하며
외로움 달랬네.

비바람 불고 눈보라 쳐도 그 뜻 이루려
기도에 몰두하고 정진을 거듭할 때
어디서 들려오는 스님의 인기척

천년의 한(恨) 이루지 못하고
몸부림치던 흔적
억겁의 바람과 햇살이
스치고 비춰 마침내 우뚝 선 정물

정상에서 북동방향으로 50m 정도 가서 오른쪽으로 내려선다. 범봉과 운문산, 상운암(卍)이 한눈에 바라다보이고, 하산 길 등산로 주변 역시 작은 돌·자갈이 널브러져 있다. 갈지(之)자 모양의 급경사 너덜 길을 조심해서 내려오면 최근 설치한 나무계단이 기다리고 있다. 조금 뒤 팔풍재(10분 소요)에 도착한다.

이곳에서 운문산 3.54km, 석골사 2.7km, 딱밭재 1.84km, 대비사 2.6km, 억산 0.52km다. 팔풍재는 사방 네 갈래의 갈림길이 나 있다. 왼쪽은 청도(대비사) 방면이고, 직진하면 범봉과 운문산방향, 지나온 길은 억산방향, 석골사로 내려가려면 오른쪽 계곡길로 내려서면 된다.

 

팔풍재 이정표가 있는 자리에서 진행방향으로 조금만 이동하면 석골사 방향의 팻말이 서 있다. 오른쪽 대비골로 내려선다. 새로 개설된 등로는 나무계단으로 등로가 정비되어 있어 걷기가 한결 편하다. 갈지(之)모양의 등로를 6~7분정도 내려오면 물길이 있는 계곡에 도착한다.

대비골이 시작되는 상류부근 인 셈이다. 여름철에는 물을 만난 고기처럼 계곡의 물소리가 이렇게 정감이가는 곳인 줄 새삼 깨닫게 하는 곳이다. 계곡 길은 완만하다. 군데군데 반석과 소(沼)가 어우러져 여름철 물놀이 장소로 적격이고, 적당히 하늘을 가린 나무들로 산행하기가 좋다.

계곡을 따라 아래로 이어지는 등로는 계곡을 서너번 건너고, 이어지기를 거듭하다보면 상운암 갈림길에 도착한다. 팔풍재에서 이곳까지 약40분정도 걸린다. 이곳에서 석골사 1.1km, 운문산 3.39km, 팔풍재 1.9km 다.

▲ 진희영 산악인·중앙농협 달동지점장

계곡물길이 합수돼는 지점에서 한참의 휴식을 취한 뒤 10여분정도 내려오면 억산 갈림길을 지나고, 곧이어 석골사에 도착한다. 산사 마당엔 작은 꽃과 화분으로 아기자기하게 꾸며 놓았고, 나무뿌리 화분에는 이름 모를 예쁜 꽃들이 심어져 있으며, 북카페도 마련되어있다.

석골사는 밀양시 산내면 원서리 454번지 운문산에 자리잡은 대한불교조계종 제15교구 본사 통도사의 말사이다. 오래전부터 스님들의 수도처로 이름난 사찰이다. 석골사는 신라 말기의 선승(禪僧) 비허(備虛) 스님이 창건했다고 전하며, 옛이름 석굴사(石堀寺)가 언제부턴가 석골사로 와전되어 불리고 있다.

석동사(石洞寺)라는 이름도 전해오고 있다. 태조 왕건(王建)이 고려를 건국할 때 경제적인 도움을 많이 주어 고려 건국 후에는 암자를 9개나 거느릴 정도로 발전하였다고 전한다.

건물로는 대광전과 칠성각, 산신각, 요사 채가 있고, 석조아미타 삼존불이 모셔져 있다. 석골사를 둘러본 뒤 오늘산행을 무사하게 마칠 수 있도록 도와주신 부처님께 감사는 마음으로 합장 삼배를 올린 뒤 밀양발(發) 15시05분, 16시40분, 17시40분 버스 시간을 맞추기 위해 발걸음을 재촉한다.

진희영 산악인·중앙농협 달동지점장

◇산행경로

석골사 주차장~석골사~새마암터골~계곡합수지점~무지개 1폭포~무지개2폭포(선녀폭포)~무지개 3폭포(나무꾼 폭포)~억산~팔풍재~대비골 발원지 부근~운문산·상운산 갈림길~석골사. 약 5시간 소요.

◇찾아가는 길

승용차로는 언양~석남사~남명리(삼양리)~석골마을 표지석~석골사까지 간다. 시외버스를 탈 경우에는 국도24호선을 따라 언양에서 밀양방면으로 가다가 얼음골~남명초등학교~석골마을 원서리에 내린다. 거기서 석골사(石骨寺)까지는 약 2.2km. 20분 정도 더 걸어가야 한다.

◇먹거리와 숙박

도시락 지참 필수. 석남터널 부근 여러 개의 식당이 성업 중이다. 그 중 포항상회 메뉴는 잔치국수, 찹쌀수제비, 파전, 동동주 등. 석남사 입구의 시인과 촌장도 인기다. 숙박지로는 아이스밸리 리조트(밀양시 산내면 남명리 1-5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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