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리꽃 빛깔의 무당기 도지면
여자는 토문강처럼 부풀어
그가 와주기를 기다렸다
옥수수꽃 흔들리는 벼랑에 앉아
아흔 번째 회신 없는 편지를 쓰고
막배 타고 오라고 전보를 치고
-중략-
빼놓은 마음을 가지러 간 그는
다시 돌아오지 않았고
여자는 백여든아홉 통의 편지를 부치고
갈대밭 둔덕에는 가끔가끔
들것에 실린 상여가 나갔다
여자의 히끗히끗한 머리칼 속에서
고드름 부딪는 소리가 났다
완벽한 겨울이었다
다프네를 향한 아폴론의 사랑이 그러했듯, 그들의 사랑은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 그 남자는 무슨 연유로 저토록 지순한 여자를 외면했는지. ‘네가 그리우면 나는 울었다’ 라는 시가 좋아서 산 시인의 시집들은 온통 투쟁 투성이었다. 못난 사회가, 실연의 아픔이 투사로 만든 건 아닌지. 의외로 ‘관계’는 한 사람을 향한 지심이 깊은 시였다. 그 지심은 혼자서는 뽑을 수가 없다. ‘지울 수 없는 얼굴’ 만이 뽑을 수가 있으니. ‘아흔 아홉 번의 편지를 쓰고 오래 못 살 거다 천기를 누설’ 하고 으르고 협박하고 애원해도 끝내 마음을 다른 데에 두고 온 남자. 한사람을 향한 맹목이 너무 깊어서 안타깝다. ‘사랑을 고치는 약은 없다. 만약에 있다면 더 사랑할 수밖에 없다.(데이비드 소로)’ 지상에서 상한 영혼, 지하 세계에서는 자유로웠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