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불황으로 존폐기로 선 중소기업들
바닥경제 움츠러들면 서민일자리도 흔들
위기상황 경영에 부담주는 정책 재고를

▲ 이광복 국회 입법정책연구회 부회장

문재인 정부의 시간당 최저임금 1만원·비정규직 제로·근로시간 단축 공약을 두고 말이 많다. 환영부터 비판까지. 소상공인, 중소기업의 반응은 심상찮다. 정부는 ‘마이 웨이’할 태세다. 상호불통이다. 우리 바닥경제를 책임지고 있는 700만 소상공인들 중 상당수는 지금 사업존폐의 고민에 빠져 있다. 전체 근로자의 88% 가량을 고용하고 있는 중소기업들도 오랜 불황에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그들이 살아남으려면 새로운 수익처를 발굴하거나, 기존의 제반 비용을 줄이는 방법밖에 없어 보인다. 문제는 당장 능동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은 비용을 줄이는 일뿐이라는 점이다. 새로운 수익처 창출은 적잖은 시간과 비용이 드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새 정부의 공약은 우리 바닥경제의 생태계를 뒤흔들 수 있는 중차대한 일이다.

이야기 한편 소개한다. 아프리카 한 부족이 원정(遠征)에 나섰다. 전투식량은 미어캣 고기였다. 행군 중 병사들이 병에 걸렸는데, 상한 고기가 원인이었다. 추장은 원정을 포기했고, 화가 나서 미어캣 고기 금지령을 내렸다. 훗날 아들 추장도 아버지의 뜻을 받들었고, 급기야 손자 추장은 “신의 이름으로 미어캣 고기를 금지”했다. 오늘날, 번식력 뛰어난 미어캣에게 둘러싸인 그 부족은 ‘신의 뜻’이라는 ‘고착화’된 사고방식 때문에 영양실조로 고통 받고 있다.(<왜 그들이 이기는가> 중)

과거에는 생존을 위한 좋은 방안이었으나, 오늘날엔 현실과 동떨어진 생각으로 변하는 경향을 ‘고착화’라고 한다. 국가 리더십이 ‘고착화’되면 공동체 구성원 모두가 위기에 빠진다. 불황만 닥치면 서민층이 먼저 쓰러지는 것처럼, 특히 상황 대처능력이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보통사람들이 큰 충격을 받는다. 고착화된 사고방식은 좀처럼 바뀌지 않는다. 큰 사건이 터진 뒤에야 “앗 뜨거!” 한다. 그래서 통상 고착화된 국가 리더십의 뒤안길에는 수많은 서민들의 피와 눈물이 흩뿌려져 있다. 과연 최저임금 1만원 등의 공약이 지금 우리 바닥경제 실정에 맞는가?

고착화를 피하기 위한 최선의 방법은 ‘소통’이다. 내 생각만 옳다는, 또는 어떤 일방의 주장만 듣고 판단을 내리는, 그런 편견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모든 이해관계자들의 호소를 지겹도록 들어보고 면밀하게 분석해 봐야 한다. 환경보존을 위한 평가작업은 1년 넘게 진행하면서 국민생활을 좌우할 문제는 왜 밀실에서 그리 급하게, 일방적으로 결론을 내리는가? 생존의 문제라면, 700만 명이 아니라 단 7명의 일이라도 신중에 신중을 기하는 것이 정상적인 정부의 태도다. 그게 국민만 바라보고 국민을 위해 일하는 정부가 취할 자세다. 취사선택하는 소통은 소통이 아니다.

삶의 터전에 위기가 닥치면 그 곳을 빠져나가는 것이 동물의 본능이다. 지금 우리 중소기업들이 본능적으로 탈(脫) 한국 러시에 가담하고 있다. 작년 한 해만도 국내 중소기업들이 해외에 투자한 금액이 총 60억2300만 달러(약 6조8700억 원)로, 해당 통계를 작성한 1980년 이래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해외법인 설립 수도 1594개로,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 이후 최대 기록이다. 기업인들이 감과 경험으로 위기를 느꼈다는 것이다. 그런 상황에다가 기업경영환경을 더 악화시킬 우려가 있는 정책을 밀어붙인다면 어찌 되겠는가?

지금도 늦지 않았다. 국가리더십의 고착화 여부를 진단하기 위해 ‘진짜 소통’의 장을 마련해야 한다. 시간이 얼마가 걸리든 모두가 만족할만한 결과를 도출해 내야 한다. 정부는 “과연 지금이 최저임금을 올릴 타이밍인가?” “올린다면 기업 등이 감내할만한 수준은 어느 정도인가?” 등을 따져봐야 한다. 바닥경제가 움츠리면 서민들 밥벌이 자리도 쪼그라든다는 사실도 잊지 말기를.

이광복 국회 입법정책연구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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