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질을 한다 시살이 사람살이 탈탈 털어한 탈곡, 가감승제, 처져 앉는 것보다 날아간 거푸집이 더 많다 알맹이 품어보지 못한 쭉정이 천지, 지구 끝까지 바람 타고 날아간 허명(虛名), 허망(虛妄), 허공(虛空), 허방(虛房), 허언(虛言) 수북이 쌓인 바깥들이 북적이는 그늘의 안쪽,

저릿저릿 동맥경화 증세 보이는 어제, 눈물로 품어보는 검불의 시간, 이 또한 퇴비가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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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밀양시 퇴로마을 근처, 위양 못에서 망연자실의 끄트머리에 앉아 환을 삼키는데 역린, 삼킬 수 없는 시간이라는 알약, 속수무책, 봄날은 간다 생의 추궁,

▲ 엄계옥 시인

입으로 하는 천 마디 말보다 눈으로 건네는 한마디 말이 더 절실할 때가 있다. 그럴 때 우리는 서로를 읽는다고 한다. 시인은 지금 내면을 들여다보며 과거와 대화 중이다. 과거가 하는 말을 받아 적는 과정에서 버린 말이 더 많다. 퇴고의 중요성은 몇 번을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시마에 붙들린 순간 말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기 때문이다. 추(推)와 고(敲)를 놓고 고심하던 가도처럼 물(物)과 정(情) 사이에서 난감해 한다. 속수무책으로 옥죄는 크로노스 앞에서 쩔쩔매며 어느 것을 버리고 취할 것인가를 고심 중에 봄이 저 멀리로 가버렸으니, 이외수 문학관에 이런 문장이 있다. ‘쓰는 자의 고통이 읽는 자의 행복으로 남을 때까지’ 그러니 자신이든 사물이든 읽고 쓰길 반복한다. 황홀한 글감옥이랄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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