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범죄중 유독 많은 ‘사기죄’
신용만으로 돈거래하는 경우 많은 탓
막연한 믿음보다 꼼꼼 따져보는게 상책

▲ 이동식 울산지법 제2형사부 부장판사

당사자들이 법정에서 서로 비난하면서 “저 사람 입에서 나오는 소리 중에 숨소리 빼고는 다 거짓입니다. 한마디로 사기꾼입니다”라는 말을 자주 한다. 우리는 소송뿐 아니라 정치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거짓말하는 사람을 흔히 ‘사기꾼’이라 부른다. 우리 형법은 이런 거짓말하는 사람을 처벌하는 죄가 여럿 있는데, 거짓말하는 증인을 처벌하는 위증죄, 거짓으로 고소하는 사람을 처벌하는 무고죄, 거짓말로 남의 돈을 가로채는 사람을 처벌하는 사기죄가 대표적이다. 그중에서 일상에서 가장 흔히 접할 수 있는 범죄가 바로 사기죄이다.

사기죄는 중국 당나라에서 ‘나라나 개인을 속여 재산을 취득한 자’를 절도죄에 준하여 처벌할 정도로 그 유래가 깊다. 우리나라도 예로부터 당률에 따라 사기죄를 처벌해 왔는데, 현행 형법은 ‘사람을 기망하여 자기 또는 제3자가 재물을 교부받거나 재산상의 이익을 취득하는 행위’를 사기죄로 규정하고 징역 10년 이하나 2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하여 단순 절도죄보다 무겁게 처벌하는 한편, 그 이득액이 5억원 이상일 경우에는 특별법으로 가중 처벌하고 있다.

사기죄는, 절도죄나 강도죄처럼 평소 모르는 범죄자에게 피해자의 의지와 관계없이 재산을 잃는 다른 재산범죄와 달리, 피해자가 신뢰하던 사람에게 자발적으로 재산을 넘겨주었다가 뒤늦게 손해를 입은 사실을 깨닫게 된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이런 연유로 사기 범죄는 피해자로 하여금 돌이켜보면 너무 터무니없는 거짓말에 바보같이 속았다는 후회로 자책하게 만들고, 범인과의 신뢰 정도에 비례하여 더 많은 재산적 피해와 더불어 배신감과 상실감으로 심적 고통을 겪게 한다.

특히 사기 범죄자에게 속은 피해자가 친지까지 추가 피해자로 전락시키는 매개역할을 하게 되거나 재산 탕진으로 가족까지 곤경에 처하게 만들어 이들의 비난을 한 몸에 받는 경우가 종종 있다. 가끔은 사기 범죄자가 검거된 후에도 자신이 풀려나야만 돈을 갚을 수 있지 않느냐고 회유하여, 궁박한 처지에 놓인 피해자로 하여금 선처를 호소케 한 후, 막상 풀려나면 약속을 지키지 않아 또다시 피해자를 울리기도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전체 범죄 중 유독 사기죄의 비율이 일본 등 다른 나라에 비하여 높다. 서울중앙지방법원과 같이 경제범죄에 대한 전담재판부를 두고 있는 법원도 사기죄를 전담재판부가 아닌 일반 사건으로 취급할 만큼 흔한 범죄이다. 이는 채권자들이 채권회수 수단으로 채무자를 일단 사기죄로 고소부터 하는 법률 문화에 기인한 것도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우리나라가 예로부터 인간관계나 체면, 인정 등을 중시하다 보니 돈 거래를 할 때 상대방의 말을 제대로 따져보지 않고 무턱대고 지갑부터 여는 경우가 많아서 그런 것으로 보인다.

이제 우리나라도 신용만으로 돈 거래를 하는 경우가 사라지는 추세이기는 하나, 점점 지능화되는 사기 수법에 대응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속이려고 달려드는 전형적인 사기꾼을 피하는 것이 쉽지 않지만, 일단 그 마수에 걸려들게 되면 도박처럼 손해를 만회하려는 욕심에 점점 더 빠져나오지 못하게 되므로 돈 거래의 첫 단추를 잘 꿰는 것이 상책이다. 무엇보다 사기 범죄는 피해자의 막연한 믿음이나 동정심 그리고 약간의 투기심에 기생하는 범죄인만큼 혹여 상대방의 달콤한 제의에 다소 미심쩍지만 지갑에 손부터 간다면 일단 사기가 아닌지 의심하고 체면 따위는 접어두고 그 의심이 완전히 풀릴 때까지 지갑에서 돈을 빼내는 일만은 삼가는 것이 최선이다. 그리고 오로지 수사기관의 힘을 빌려 채권을 손쉽게 회수할 목적으로 근거 없이 채무자를 사기죄로 고소하였다가는 무고죄로 처벌받을 수 있다는 점도 잊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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