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분법적 ‘양성평등’ 의견분분
다양한 성적 정체성 아우를
‘성평등’으로 명칭 변경 필요

▲ 안미수 부산대학교 여성연구소 전임연구원

매년 7월1일부터 7월7일까지는 ‘양성평등기본법’에 근거해 기념하는 양성평등주간이다. 1995년 제정된 여성발전기본법이 2015년 양성평등기본법으로 개정 시행되면서 매년 기념하던 여성주간의 명칭은 양성평등주간으로, 여성발전위원회는 양성평등위원회로 변경되었다.

개정 당시 여성가족부에서는 여성발전기본법이 ‘낙후된 여성의 발전’에 중점을 뒀다면 양성평등기본법은 ‘모든 영역에서 남성과 여성의 동등한 권리와 책임, 참여 기회를 보장하는 것’이라고 개정취지를 설명했다. 양성평등기본법의 명칭은 기존의 여성정책이 ‘여성만’을 대상으로 한다는 오해와 역차별에 대한 의심을 불식시키려는 고민들의 타협지점이기도 했다.

실제 개정 과정에서 처음 발의됐던 법제명은 ‘성평등기본법’이었지만 종국에는 양성평등기본법으로 결정됐다. 그러나 ‘양성평등’이라는 용어와 법 개정의 취지가 남성과 여성, 두 성별의 평등만을 지향할 수밖에 없는 태생적(?) 한계로 인해 성평등기본법으로의 수정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지속적으로 제기돼 왔다.

혹자는 이 용어들의 차이가 무엇인지, 그렇게 중요한 것인지, 남녀가 평등하자는 법의 취지만 제대로 전달되면 되는 것 아닌지 반문할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렇게 양성평등과 성평등이라는 유사 용어에 대해 의견이 분분한 이유는 단지 한 글자의 차이가 그 이상의 의미로 적용되기 때문이다.

성평등이나 양성평등 모두 영어로 번역하면 ‘Gender Equality’이다. 실제로는 두 용어의 차이가 크지 않은데, 우리 사회에서는 양성평등이 성별 권력관계를 나타내는 젠더 평등보다는 생물학적 남녀 양성의 평등으로 해석된다는 것이다. 성평등은 단순히 여성과 남성의 수를 50% 또는 60% 등으로 맞추면서 여성과 남성이 동등하게 참여하기만 하면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실제 현장에서는 생물학적인 남성과 여성의 수를 맞추는 기계적 평등으로 인식되면서 성평등과 무관한 인사가 양성평등위원회에 포함되기도 하고, 양성평등주간행사이므로 여성단체에 대한 행사 지원 비율을 줄여야 한다는 웃지 못할 상황이 발생하기도 한다.

이는 성별을 남성과 여성이라는 두 개로만 범주화할 뿐 아니라 이 두 범주로 규정되지 않는 또는 설명되기를 거부하는 이들을 배제시킬 우려가 있다. 얼마 전 남성도 여성도 아닌 ‘무성(agender)’의 존재를 있는 그대로 인정한 미국의 판결에서 볼 수 있듯, 아니 그 이전부터 다양한 성적 정체성을 가진 이들이 그들의 존재 자체로 증명하듯 이 세상에는 두 개의 성별만 있는 것이 아니다. <양성평등에 반대한다>라는 책에서는 성별이 남녀로 구성되는 한 쌍이 아니라 LGBT(레즈비언, 게이, 양성애자, 트랜스젠더), 간성인(intersexuals) 등 다양한 성적 정체성을 가진 복수라는 점을 강조한다.

성차별은 단순히 모든 남성에 비해 모든 여성이 차별받고 있는 이분법적 양태로 나타나기 보다는 계층, 인종, 성적 지향, 장애여부 등 개인이 가지고 있는 다양한 정체성에 따라 차별의 양상이 달라지는 교차성(Intersectionality)을 보인다. 여성 내부에서도 계층, 성적지향 등에 의해 다른 경험을 하기 때문이다. 아직 젠더 권력관계가 우리 사회에서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지만 남녀 차별에 대한 공감대에서 확대돼 다양한 층위에서 교차하며 발생하는 모든 종류의 차별들에 대한 사회적 감수성이 높아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최근 서울의 한 대학교 동아리들은 교내 양성평등센터의 명칭이 성이분법적 고정관념에 근거하고 있다는 이유로 성평등센터로 변경해달라고 학교 측에 요청했고, 이번 대선에서 대부분의 후보들도 양성평등 대신 성평등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정부도 이미 성평등지수라는 정책용어를 공식적으로 사용하고 있고, 외국에서도 양성평등보다는 포괄적 의미가 담긴 성평등 용어를 사용하는 추세이다. 서울시는 올해에도 성평등주간 행사를 개최했다. 물론 사회적 합의가 우선돼야 하겠지만 머지않은 때에 울산광역시 성평등주간 행사가 개최되기를 기대해본다.

안미수 부산대학교 여성연구소 전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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