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한 선배의 서각 선물을 다시 찾아
새삼 ‘밥값’에 대한 단상 떠올리며
오늘도 밥값을 다했는지 스스로 묻는다

▲ 김종국 서울교통공사 서비스안전센터장

여러 사람이 함께 식사하는 자리에서 식사에 대한 감사의 기도를 하는 사람을 보면 참으로 부럽고 감동적이다. 종교적인 의식의 의미를 떠나 음식을 내어준 대자연과 농사를 지은 농부들, 그리고 음식을 요리한 이들의 노고에 감사를 드리고 나아가 주변의 어려운 이들과 세상의 굶주리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한다는 것은 매우 인도적이며 숭고한 행동이라 하겠다.

어쩌면 이러한 기도는 먼 옛날 수렵시대부터 어렵게 잡은 사냥감이나 물고기, 운 좋게 얻은 과실이나 수확물을 앞에 두고 함께 기뻐하는 과정에서 연유되어 일상적인 의식으로 이어져 온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식사에 대한 감사의 기도는 종교에 따라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대개가 신과 대자연, 그리고 수고한 이들에 대한 감사와 이웃과 세상에 대한 나눔과 배려 등의 공통점을 엿볼 수 있다.

불교의 오관게(五觀偈)는 스님들의 식사 때마다 식사에 대한 고마움을 일깨우는 게송인데 그 다섯 중 하나가 ‘자기의 덕행이 공양을 받을 만한 것인가를 생각하는 것’이라 한다.

어떻게 생각해보면 ‘밥 먹을 자격’을 말하는 것 같기도 하고 달리 생각하면 ‘밥값을 했느냐’는 의미로 들리기도 한다.

시골에 내려가면 으레 앞마당의 잡초도 뽑고 요즘 같은 가뭄에는 텃밭에 심어놓은 작물에 물을 주곤 하는데 그 때마다 밥상 앞에 마주 앉으면 어머님께서는 매번 “오늘 밥값 크게 했다. 많이 들어라”라고 하신다. 일종의 치하이자 노고에 대한 격려이고 시골스런 밥상은 부상인 셈이다.

어느 시인의 <밥값>이란 시집이 인기가 한창일 무렵 우연히 인터넷에서 ‘밥값’이란 글과 수저가 그려진 그림 한 점을 발견하고 페이스 북에 올린 적이 있었는데 퇴직 후 서각을 배우시던 선배님께서 나와 이미지가 딱 맞아 떨어진다며 첫 작품으로 만들어 선물로 주셨다.

지난 달 말 근무지를 옮기고 나서 짐을 정리하다가 서적들 속에서 그 서각을 용케도 찾았는데 늘 잘 볼 수 있도록 전처럼 책장 앞에 올려두고 보니 감회가 새롭다. ‘밥값, 오늘 나는 나의 밥값을 다 했을까?’ 이 얼마나 평범하면서도 마음 속 깊이 닿는 말인가.

요즘 정치인 등 유명 인사들이 잘못된 과거사로 여론의 뭇매를 맞기도 하지만 티 나지 않는 평범한 행동으로 잔잔한 감동을 주는 이들도 있다.

그런데 평범하고 당연한 일들이 언론에 보도되고 화제가 되면 보는 각도에 따라 평가가 달라질 수도 있겠다.

설정이나 준비된 행동으로 관심을 끌고자 하는 것은 문제지만 있는 그대로의 순수한 행동이라면 잔잔한 감동으로 조용히 지켜봐 주는 것도 아름답다는 생각을 해본다. 마치 묵묵히 자신의 ‘밥값’에 충실한 우리의 친근한 이웃들을 대하듯이 말이다.

김종국 서울교통공사 서비스안전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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