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부 장수왕과 하지태왕(1)
글 김하기 그림 이상열

 

광개토태왕 4년(394) 6월15일에 두 아이가 태어났다. 한 아이는 고구려 왕궁에서 태어났고, 한 아이는 가야의 움집에서 태어났다.

고구려 국내성 왕궁에서 태어난 아이는 광개토태왕의 아들 거련(장수왕)이었고, 대가야(고령)의 움집에서 태어난 아이는 하령왕의 아들 하지(하지태왕)였다.

광개토태왕이 어느 날 꿈속에서 고구려의 시조 주몽을 만났다. 주몽은 그에게 커다란 항아리를 주었는데 하늘에 곡식을 담아 제사 지내는 신성한 호련(瑚璉)이었다. 거대한 호련 안을 들여다보니 용이 한 마리 누워 있었다.

광개토태왕은 꿈을 깬 뒤 매우 기뻐하며 말했다.

“장차 태자를 얻을 길몽이로다. 꿈에 거대한 련을 보았으니 이름을 거련(巨璉)이라 하리라.”

태왕은 태몽 이후 태비가 임신한 것을 알고 미리 아이의 이름을 지은 뒤, 남으로 출정을 떠났다. 남으로는 백제, 가야, 신라 삼국이 동맹을 맺고 아리수(한강)남쪽에 진을 치고 있었고, 아리수 하구에는 백제의 속방인 왜의 배 100척이 들어와 있었다.

3년 전 백제의 아신왕은 고구려와 아리수 회전에서 패배한 뒤 절치부심 끝에 대가야의 하령왕, 신라의 내물왕과 삼국동맹을 맺고, 고구려와 건곤일척의 남북 대회전을 준비했다.

광개토태왕은 국경 수병으로 먼저 약한 고리인 아리수 상류의 신라진영을 쳐 내물왕을 붙잡아 항복을 받아내었다. 신라 내물왕은 사돈국인 백제의 요청에 못 이겨 출병했으나 고구려에 아들 실성이 볼모로 잡혀 있기 때문에 전의가 약했다.

광개토태왕은 주력군인 백제와 왜를 고구려의 평양 주둔군인 보기군으로 제압했으나 끝까지 저항한 적은 뜻밖에도 대가야의 하령왕이었다. 대가야 하령왕은 한강 남쪽의 관악산을 등지고 버티다 오히려 고구려군을 기습하여 광개토태왕의 오른팔인 고상무 장군을 잡아 목을 베었다. 심복을 잃어 대노한 태왕은 중국대륙을 휩쓴 고구려 정예기병 5천을 이끌고 대가야까지 쳐들어가 하령왕과 왕족의 삼족까지 모두 진멸했다.

광개토대왕이 직접 장도를 빼어 하령왕의 목을 치기 전 말했다.

“마지막 할 말은 없는가?”

“패장은 말이 없다.”

“옆에 있는 네 아내가 임신했음에도 할 말이 없는가?”

“우리를 욕보이려는가. 한 명도 남김없이 모두 베어라.”

 

우리말 어원연구= 아리수(한강). 산스크리트어-영어 사전(Monier.M.Williams 저)에 ‘ari’(아리)는 ‘the beloved sweet heart’(사랑스런 연인)로 나온다. 우리말 ‘아리땁다’ ‘아름답다’도 여기에 나오는 ‘아리’와 연관된다. 아리수는 세간에 알려진 것처럼 ‘큰 강’일 수 있지만 산스크리트에 따르면 ‘아름다운 강’ ‘사랑스런 강’으로 풀이된다. 산스크리트어 중에 ‘arilangh’(아리랑)이라는 말도 있다. 그 뜻은 ‘the sweet heart hasten to leave quickly’(사랑하는 님이 급하게 떠남)다. 한편 한강의 옛말이 ‘아리수’라는 사실은 광개토대왕릉비를 통해 최초로 밝혀졌다. 강상원 저, <한글고어사전실담어주>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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