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미수죄 적용 징역형…재판부 “정당방위 인정 안돼”

녹두색 수의를 입은 이모(33·여)씨는 법정에서 “수년간 폭력을 행사한 남편이 그날도 갑자기 흉기로 제 허벅지를 찔렀고 극도의 위협을 느껴 흉기를 뺏으려 승강이를 벌이다 남편에게 큰 상처가 입혔습니다”라며 흐느꼈다.

지난해 겨울, 경비원 A씨는 아파트 1층 승강기 앞에서 알몸 상태로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는 여성을 발견하고 깜짝 놀랐다.

이 아파트 3층에 사는 이씨였고 A씨는 곧바로 119 상황실에 신고했다.

잠시 후 화단 쪽에 ‘쿵’ 소리가 들렸고 14층에서 떨어진 이씨의 남편 정모(69)씨가 피를 흘린 채 숨져 있었다.

재판부의 질문에 이씨는 법정에서 악몽 같은 결혼 생활과 기억하고 싶지 않은 그 날을 떠올렸다.

조선족인 이씨는 2002년 자신보다 33살이나 많은 정씨를 만나 결혼했다.

사업하는 남편과 두 아들을 두고 타국에서 남부럽지 않은 나날을 보냈다.

얼마후 정씨는 사업이 잘 풀리지 않았고 이씨와의 사이에 불화도 생겼다.

“부인을 잘못 만났기 때문”이라며 이씨를 무시하고 폭력을 행사했다.

폭력은 결혼 10년 만에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정씨는 2012년 말 주먹으로 이씨의 얼굴을 수차례 때린 뒤 머리채를 잡아 바닥에 내리쳤고 이씨는 손톱으로 정씨의 목을 할퀴며 저항했다.

정씨의 폭력은 지난해 1월부터 더 심해졌다.

이 무렵 정씨에게 치매 증세까지 나타났다.

정씨는 지난해 1월 침대에서 자고 있던 이씨의 이마를 자신의 이마로 내리찍은 뒤 주먹으로 배와 다리 등을 마구 때렸다.

같은해 9월에는 이씨의 목을 조르고 둔기로 이씨의 머리를 수차례 내리쳤다.

아침 식사를 준비하던 이씨에게 다가가 갑자기 함께 죽자며 흉기를 휘두르면서 주방 집기 등을 부수기도 했다.

견디지 못한 이씨는 낮 동안 남편을 피해 다른 거처에서 생활했다.

주말과 아침 시간에는 남편과 아들의 식사를 차려주고자 집에 들렀다.

그리고 사건이 발생한 지난해 12월 16일.

이날 역시 이씨는 아들의 아침 식사를 차려주고자 집에 들렀고 잠시 외출한 뒤 다시 집에 들어갔다가 깜빡 잠이 들었다.

이를 본 남편이 성관계를 요구했고 또 맞을까 무서워 응했다.

침대에 누운 순간 정씨는 베게 밑에 미리 감춰둔 흉기를 꺼내 이씨의 허벅지를 깊숙이 찔렀다.

놀란 이씨는 남편에게 달려들어 실랑이를 벌이다 흉기를 빼앗은 뒤 마구 휘둘러 정씨의 얼굴과 팔, 등허리 등 15군데 상처를 입혔다.

10년 넘게 이어진 남편의 폭력에 대한 분노가 한꺼번에 폭발했다.

정씨는 피를 흘리며 집 밖으로 나와 승강기를 타고 14층으로 올라간 뒤 아래로 뛰어내려 숨졌다.

이씨는 역시 기어서 밖으로 나와 승강이에 탔으나 피를 흘린 채 쓰러졌고 다행히 경비원에게 발견돼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다.

이 사건을 수사한 경찰은 국과수에 시신 부검을 의뢰해 정씨의 사인을 이씨가 휘두른 흉기가 아닌 추락으로 보고 이씨에게 살인미수 혐의만 적용해 구속했다.

정씨는 오랜 지인에게 이씨와 함께 죽겠다는 말을 종종 했던 것으로 조사됐다.

법정에 선 이씨는 “남편이 흉기로 공격한 뒤 바로 자해해 생명의 위협을 느꼈고 흉기를 뺏고자 실랑이하는 과정에서 일부 상해를 입혔다”며 정당방위를 주장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남편의 상처가 자신의 손이 닿지 않는 부위에 있는 점 등을 이유로 자해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정당방위 역시 “이씨의 행위는 방어하기 위한 것이라기보다 살해 등 공격할 의사로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며 인정하지 않았다.

결국 재판부는 지난 25일 이씨에게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하고 240시간의 사회봉사를 명령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흉기로 남편을 찌르거나 베어 살해하려다가 미수에 그쳐 범행 방법, 결과, 위험성 등에 비춰 죄질이 중하다”고 판시했다.

이어 “다만 피고인은 수년 전부터 남편에게 폭행을 당했고 이 사건 당일에도 무방비 상태로 있다가 흉기에 찔렸다”며 “남편을 제지하고자 흉기를 뺏고 이후 우발적으로 범행이 이뤄진 점 등을 고려해 양형했다”고 덧붙였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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