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준호 전 교수 소장본…“흥부는 덕수장씨 시조, 놀부는 악인 아냐”

▲ 송준호 전 연세대 교수가 소장한 흥보만보록.

조선시대 판소리계 소설인 ‘흥부전’의 가장 오래된 필사본이 발견됐다.

기존에 알려진 흥부전 이본 40여 종과는 배경과 내용이 상당히 다르다는 점에서 중요한 사료로 평가된다.

이번에 확인된 흥부전 최고본(最古本)은 송준호 전 연세대 국어국문학과 교수가 소장하고 있던 자료로, 1833년에 쓰인 것으로 추정된다.

표지에 ‘박응교전’(朴應敎傳)이라고 적힌 60면짜리 책에 ‘박응교전’과 합본돼 있으며, 제목은 ‘흥보만보록’이다.

정병설 서울대 국어국문학과 교수와 함께 이 자료를 조사한 김동욱 박사는 27일 “지금까지는 미국 하버드대 옌칭도서관에 있는 흥부전 이본이 가장 오래된 것으로 알려졌다”며 “옌칭도서관 흥부전은 1897년 일본인 하시모토 아키미가 1853년에 작성된 자료를 필사한 것”이라고 말했다.

김 박사는 “신재효가 1870년 무렵 춘향가, 심청가, 흥부가, 수궁가, 적벽가, 변강쇠가 등 여섯 작품을 정리해 가집으로 남겼는데, 흥보만보록의 필사 시기는 이보다 앞선다”며 “판소리계 소설 중에서 가장 이른 시기의 모습을 담고 있는 이본이라는 점에서 중요한 의의를 지닌다”고 강조했다.

▲ 흥보만보록이 실려 있는 책. 표지에 박응교전(朴應敎傳)이라고 적혀 있다.

흥보만보록은 흥부전의 주요 이본인 ‘경판25장본’, 신재효의 ‘박타령’과 비교하면 내용이 간략한 편이다.

특히 주목할 만한 점은 배경이 경상도나 전라도가 아닌 오늘날의 평안도 평원군 순안면 일대를 지칭하는 평양 서촌이라는 사실이다.

김 박사는 “이전에 발견된 흥부전 이본은 모두 삼남 지방이나 장소를 정확히 비정할 수 없는 곳을 배경으로 했다”며 “흥보만보록이 발굴되면서 흥부전의 발상지를 재검토할 필요성이 생겼다”고 주장했다.

흥부가 결말 부분에서 무과에 급제해 황해도 개풍군을 본관으로 하는 덕수장씨(德水張氏)의 시조가 됐다는 점도 흥미로운 대목이다.

기존의 흥부전에는 흥부와 놀부가 연씨나 박씨라고 표기돼 있었다.

이에 대해 김 박사는 “흥보만보록은 판소리가 호남 지역에서 발생했다는 통념과 어긋난다”며 “판소리 여섯 마당 중에 변강쇠가는 황해도에서 유래했다는 주장이 있었는데, 흥부전도 애초에 서도 지역에서 생겨났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흥보만보록의 또 다른 특징은 선악의 구도가 명확하지 않고, 흥부와 놀부가 모두 평민 출신의 부잣집 데릴사위로 표현됐다는 것이다.

흥보만보록에서 형제 사이에 빈부 격차가 발생한 이유는 처가에 살던 흥부가 가난한 친부모를 봉양하기 위해 친가로 돌아온 반면, 놀부는 처가에 눌러앉았기 때문이다.

또 많은 흥부전 이본에서는 제비가 흥부의 집에 날아온 것으로 묘사돼 있지만, 흥보만보록에서는 흥부가 우연히 다리를 다친 제비를 발견했다고 서술됐다.

김 박사는 “흥보만보록에서 놀부는 욕심 때문에 동생을 내쫓거나 부자가 된 동생 집을 찾아가 행패를 부리는 후안무치의 악인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흥부와 놀부가 평민 신분임이 분명하게 드러나 있는 점을 볼 때 초기 판소리계 소설의 주요 담당층은 평민이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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