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주재한 국무회의에서 신고리 원자력발전소 5·6호기 공사를 일시 중단하고 3개월간의 공론화작업을 벌이기로 했다고 27일 홍남기 국무조정실장이 발표했다. 공론화작업은 공론화위원회 구성으로부터 시작된다. 그러나 이들에겐 결정권이 없다. 공론화 방식의 설계와 국민소통 촉진 등의 역할을 한 다음 최종결정을 하게 될 배심원단을 구성하는 것이 이들의 몫이다. 배심원단 구성이라는 방안은 독일의 ‘핵폐기장 부지 선정 시민소통위원회’에서 본땄다고 한다. ‘신고리원전 5·6호기를 포함해 신규 원전 건설 전면 중단’을 공약했던 문대통령이 막상 현실을 들여다보니 건설중단이 만만치 않다는 것이 확인되면서 새로운 방안 모색에 나선 것으로 해석된다.

정부는 일단 공을 시민배심원단으로 넘겼다. 그런데 원전 건설 중단이라는 중차대한 일을 배심원단의 결정에 맡길 일인지에 대해서는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이미 착공한 신고리 5·6호기의 건설 중단은 국가에너지정책의 전환 시점을 그만큼 앞당기는 매우 중요한 결정이 된다. 독일이 핵폐기장을 어느 곳에 지을 것인가를 선택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라 하기 어렵다는 말이다. 배심원단이 어떤 사람들로 구성될지 모르겠으나 그들의 결정에 국민들이 수긍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이날 정부 발표에 따르면 5월말 기준으로 5·6호기의 종합공정률은 28.8%이다. 총매몰비용은 2조6000억원이 될 것으로 추산했다. 당장 발생하는 비용이나 지역주민들의 반대도 문제지만 국가의 에너지정책은 향후 에너지 수급과 산업 활동에 미치는 영향이 중요하게 고려돼야 한다. 우리나라의 중요한 수출산업의 하나인 원전산업 중단에 따른 사회·경제적 파장에 대한 면밀한 분석에 의해 엄중하게 결정해야 할 일이다. 국가의 에너지 기술은 선택과 집중이 아니라 포트폴리오 형식의 중용이 필요하다는 전문가들의 지적에도 귀를 기울여야 한다. 정책전환에 앞서 전력대책부터 내놓아야 한다는 지적도 무시할 수 없는 현실이다. 탈원전을 결정했다가 회귀하고 있는 국가들의 사례를 재검토해서 우리의 현실과 비교분석해볼 필요도 있다.

지난 18일 영구정지된 고리 1호기를 포함해 우리나라엔 원전이 25기가 있다. 문대통령의 공약대로 다른 원전도 설계수명 연장없이 영구정지를 한다면 2026년까지 총 8기가 정지된다. 설계수명 만료일을 기준으로 2~5년 전까지 계속운전을 위한 평가보고서를 제출해야 하는 점을 감안하면 문대통령의 영향권에 있는 원전이 이들 8기가 되는 셈이다. 문대통령의 공약인 국가 에너지정책 전환의 방점을 굳이 현실적 부담이 큰 신고리 5·6호기 건설중단에 찍을 이유가 있을까 싶은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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