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보명 성안중학교 교사

수업시간에 나눠준 학습지를 아이들이 푸는 순간, 교실은 조용하다. 고개 숙인 채 학습지에 집중하는 아이, 옆 친구와 소곤소곤 이야기하는 아이, 노곤한 눈꺼풀과 힘겨운 싸움을 하는 제각각의 모습을 보며 나는 학창시절 은사님 한 분을 떠올린다.

중학교 1학년, 바뀐 환경에 적응하지 못했던 나는 학교에 오는 것이 참 많이 고통스러웠다. 교과마다 달라지는 선생님들의 엄한 태도에도 기가 죽고, 새로 만난 친구가 낯설어 어찌할 바를 모르며 방황을 하고 있었다. 지금으로 치면 아마도 학교 부적응 학생이었을 것이다. 어떻게 하면 학교에 안 갈 수 있을까만 골똘하게 궁리하던 그 때 그 시절, 내게 큰 위안을 준 사람은 바로 국어 선생님이었다.

그 선생님께서 내게 특별히 어떤 도움을 주셨던 것은 아니다. 선생님과 개인적으로 이야기를 나눈 기억도 별로 없다. 내 기억 속에 남아 있는 그 선생님의 모습은 나를 바라보고 있었던 눈빛, 그 한 장면일 따름이다. 선생님께서는 그저 묵묵히 나를 지켜봐주셨다. 선생님의 눈빛은 때로는 나를 지지하고 격려했으며, 때로는 따뜻하게 위로했다.

실제로 선생님의 마음이 어땠는지는 모르겠지만 나의 마음을 꼭 알아주는 것만 같았던 선생님의 그 눈빛이, 아마도 나를 학교에서 더 멀어지지 않게 붙잡아준 것이 아닐까 싶다. 선생님의 그 따뜻한 눈빛을 마주하고 싶어서 나는 국어시간마다 선생님의 모든 말씀에 귀를 기울이곤 했었다.

선생님의 격려 덕분이었을까. 힘든 시간이 있었지만 그런대로 나는 중학교에 적응했고, 웃으며 기억할 수 있을만한 추억들과 소중한 인연을 만났다. 시간이 흘러 내가 국어교육과를 가서 국어 교사가 되겠다고 선언한데는 아마 선생님의 영향도 없지 않았으리라 생각한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다 흔들리면서 피었나니/흔들리면서 줄기를 곧게 세웠나니/흔들리지 않고 가는 사랑이 어디 있으랴. 젖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이 세상 그 어떤 빛나는 꽃들도/다 젖으며 젖으며 피었나니/바람과 비에 젖으며 꽃잎 따뜻하게 피웠나니/젖지 않고 가는 삶이 어디 있으랴.”­도종환, <흔들리며 피는 꽃>선배 교사들이 자주 하셨던 말씀이 있다. 아이들은 다 안다고. 저 사람이 기댈 수 있는 사람인지, 나를 아끼고 사랑하는지 말로 표현은 못해도 아이들은 몸으로 안다고 했다. 내가 무척 흔들렸던 그 때 나에게 큰 위안이 되었던 것은 선생님의 눈빛, 사소하지만 의미있는 눈빛이었다. 선생님께서 그러셨던 것처럼 내가 만난 아이들의 흔들림도 넉넉한 마음으로 지켜보는 것, 그것이 교사의 마음가짐이 아닐까 스스로를 되돌아본다. 이제 나는 젊었던 선생님만큼 나이를 먹었다. 선생님의 모습에 내 모습을 비춰보면서 나는 다시금 눈빛의 의미를 생각한다. 이보명 성안중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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