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초’ 부딪친 교육개혁…대부분 외고·자사고 폐지와 맞물려
고교학점제·성취평가제·수능 절대평가 줄줄이 영향 불가피

외고·자사고 폐지의 신호탄을 쏘아올릴 것으로 예측됐던 서울시교육청이 4개 외고·자사고를 재지정하면서 다른 지역은 물론 정부 정책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서울시교육청의 이번 재지정 결과를 두고 정권교체로 교육정책의 큰 변화가 예상되는 데다 내년 지방선거를 앞둔 상황에서 교육현장의 혼란을 줄이기 위해 고육책을 택한 게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일각에서는 외고·자사고 폐지가 늦어질 경우 고교 내신 성취평가제(절대평가제)와 2021학년도 수능 절대평가 도입 등 현 정부가 제기한 교육공약도 줄줄이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고 있다.

◇ 한 발 물러선 서울교육청…재지정 취소보다 정부 결단에 초점

경기도교육청과 외고·자사고 폐지에 가장 강경한 입장을 밝혀왔던 서울시교육청이 28일 4개 외고·자사고를 재지정하고 사실상 정부로 공을 넘긴 것은 교육현장의 반발과 혼란을 줄이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실제로 서울시교육청은 “시·도별로 추진할 때의 혼란상 등을 고려해 중앙정부가 주도하는 고교체제 단순화 실행 방안을 제안한다”고 밝혔다.

5년 단위로 진행되는 평가를 통해 외고·자사고를 폐지할 경우 지역별·학교별로 매년 혼란이 되풀이될 수 있다.

외고·자사고의 재지정 시기가 학교마다 다르고, 대부분 학교의 재지정 평가가 교육감 선거 이후인 2019∼2020년 몰려 있기 때문이다.

교육감이 외고·자사고 폐지론에 공감하지 않는 지역에서 이들 학교를 남겨둔다면 입시 쏠림 현상도 우려된다.

이런 문제점을 고려하면 굳이 서울시교육청이 총대를 메고 외고·자사고 폐지에 앞장서는 것보다는 여론 수렴과 정책 집행이 상대적으로 수월한 중앙정부의 결정을 따르는 편이 낫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이 내년 교육감 선거를 의식한 것 아니냐는 시각도 일부 있다.

자유학기제와 반값등록금을 제외하고 문재인 정부가 제시한 대부분의 교육공약은 지난 정부의 교육정책과 방향을 달리한다.

이 때문에 많은 학생과 학부모가 정권교체에 따른 교육정책 변화로 혼란스러워하는 상황에서 조 교육감이 외고·자사고 폐지에 나설 경우, 이와 직접 관련이 없는 학부모 가운데서도 개혁적 정책에 반감을 갖는 이들이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

조 교육감이 취임 직후인 2014년과 2015년 상당수 자사고와 서울외고에 대해 지정 취소 결정을 내리면서 교육부와 정면 대립했던 사례는 이런 분석을 뒷받침한다.

다만, 서울시교육청은 “이번 재평가는 2015년 당시 평가지표와 평가방식을 동일하게 적용했다”며 “교육청이 추진하는 ’초·중등교육 정상화를 위한 고교체제 개편‘과는 별개의 사안”이라고 선을 그었다.

◇ 초·중등교육법 개정 통한 단계적 폐지 가능성 커져

서울시교육청의 이런 태도에 따라 다른 진보성향 교육감들 역시 교육부에 초·중등교육법 개정을 촉구하는 방식으로 외고·자사고 폐지 정책을 에둘러 추진할 가능성이 커졌다.

이럴 경우 일괄 폐지보다는 단계적 폐지가 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현재 초·중등교육법은 법과 시행령·시행규칙 등에서 외고·자사고·국제고·국제중 등의 설립·운영 근거와 학생 선발방법 등을 정하고 있는데 이들 법령을 모두 손보려면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법을 바꿨다 하더라도 다음 재지정 평가까지 운영 기간이 남은 외고·자사고를 한꺼번에 일반고로 전환할 방법은 마땅치 않다.

이 때문에 법 개정을 통해 외고·자사고 제도를 폐지한 뒤 기존 학교에 대해서는 5년 주기 평가 시기에 맞춰 단계적으로 일반고로 전환하도록 하는 방식이 추진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이에 대해 교육부는 외고·자사고 폐지 방법에 대한 구체적인 검토를 한 적이 없다며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오승현 교육부 학교정책관은 “아직 (교육부 장관 후보자) 청문회도 끝나지 않아 구체적인 안을 마련하지 못한 상황”이라며 “(법 개정에 따라 일괄 전환이 가능한가에 대해서는) 법률 검토가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 교육개혁 시작부터 ‘암초’…고교 성취평가제·수능 절대평가 영향 촉각

외고·자사고 폐지에 예상보다 오랜 기간이 걸릴 것으로 보이면서 교육계에서는 문재인 정부의 교육정책이 시작부터 예상치 못한 장애물을 만났다는 분석이 나온다.

고교 성취평가제·고교학점제·대학수학능력시험 절대평가 전환 등이 대부분 외고·자사고 폐지와 맞물려 있는 정책이기 때문이다.

일례로 성취평가제는 석차로 상대평가를 하는 대신, 학생이 무엇을 얼마나 배웠는지 교과목별로 성취도 점수를 주는 절대평가 방식이다.

성취평가제를 시행할 경우 내신성적 관리가 상대적으로 어려웠던 외고·자사고에 우수한 학생들이 몰릴 가능성이 있어 외고·자사고 폐지를 먼저 시행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컸다.

고교학점제도 마찬가지다.

고교학점제는 고등학교에서 필수교과를 줄이고 학생에게 교과 선택권을 줘 원하는 수업을 들을 수 있게 하는 제도다.

하지만 좋은 석차를 받을 수 있는 대규모 수업에만 학생들이 몰릴 우려가 있어 성취평가제가 먼저 실시돼야 할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견해다.

수능 절대평가 역시 이런 논의의 연장선에서 외고·자사고 폐지, 성취평가제·고교학점제와 함께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다.

이 때문에 외고·자사고 폐지라는 첫 단추를 끼우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릴 경우 다른 교육정책을 시행하는 데 걸림돌이 생기거나 교육현장의 혼란이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김상곤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후보자 역시 이런 상황과 최근 교육현장의 혼란을 의식한 듯 정책 추진에 대한 ‘속도조절’을 시사한 바 있다.

그는 국회 서면질의 답변에서 “외고·자사고의 일반고 전환에 대해서는 현장의 혼란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추진할 필요가 있다”며 “(수능 절대평가를) 2021학년도에 적용할지에 대해서는 다양한 견해가 있으므로, 관계자의 의견을 충분히 듣고서 구체적인 방향을 정하겠다”고 전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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