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구대 암각화를 찾아온 우리나라 주요 인사는 헤아리기도 어려울 정도다. 지난 십수년간 국무총리와 국회의장, 국토부 장관, 문화부 장관, 문화재청장, 국회의원 등 사람이 바뀔 때마다 현장을 보겠다며 비장한 각오로 울산으로 내려왔다. 이들의 방문에는 행정 인력이 총동원된다. 울산시는 보고자료를 만들고 현장엔 시장까지 나간다. 시장이 목청을 높여 설명을 하면 고개를 끄덕이며 돌아간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이다. 그들은 대안 없는 원론만 반복하다가 임기를 마치고 떠나버리기를 반복해왔다.

28일 문화재청 문화재위원회 위원들이 울산을 방문했다. 대거 교체된 문화재위원들은 지난 18일 서울 고궁박물관에서 열린 생태제방안에 대한 심의에서 현장을 확인하고 심도있게 검토할 시간이 필요하다면서 보류 결정을 내렸다. 반구대 암각화 보존문제는 대통령의 공약이 될만큼 국정의 중심에 있는 유산이다. 그런데 문화재위원으로 선임된 전문가가 반구대 암각화를 본적도 없고, 그래서 심의도 못한다는 것을 지역주민들로서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난감할 따름이다.

이날 문화재위원들의 현장방문은 10여년전부터 수없이 보아왔던 장면의 반복이었다. 시장은 생태제방 건립이 유일한 대안이라고 역설했고 문화재위원들은 “문화재도 보존하고 물문제도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을 더 찾아볼 필요가 있다”는 원론적 의견을 반복했다. 이날 새롭게 제기된 의견이라면 제방이 아닌 터널이 어떠냐는 정도다.

사실상 반구대 암각화 보존방안은 정답이 제시돼 있다. 운문댐 물을 울산에 제공하고 사연댐의 수위를 낮추는 것이다.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알려진 방안이다. 그러나 이 정답대로 실행하려면 문화재청이나 문화재위원들의 역량으로는 불가능하다. 그렇다고 차선책을 대안으로 결정하기도 부담스럽다. 문화재위원들이 이날 울산을 방문한 것도 최선책을 찾자는 것이 아니라 차선책인 생태제방안의 채택여부를 결정하기 위한 것이다. 문화재청에 결정을 맡겨서 해결될 일이 아니라는 말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당대표시절인 2016년 8월 반구대를 방문한 적이 있다. 대선 과정에서는 암각화 보존과 식수문제를 함께 해결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도종환 문화체육부장관은 청문회에서 “댐 수위를 낮추고 현 지형을 유지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며 동시에 울산권 맑은 물 공급사업이 추진되도록 범정부적 노력을 해나가겠다”고 밝혔다. 문화재청 뿐 아니라 국토부, 대구시, 경북도, 울산시, 수자원공사 등이 뜻을 모으도록 대통령이 나서야 한다. 바위그림은 점점 희미해져가고 있다. 반구대 암각화는 울산을 넘어 우리나라의 국보(285호)이고 인류의 유산이다.

 

저작권자 © 경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