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밭 마을 젊은 아낙 곡 소리 구슬프다
현문(懸門) 향해 울부짖다 하늘에 호소하네.
구실 면제 안 해줌은 있을 수 있다지만
남근을 잘랐단 말 듣도 보도 못하였소.
시아버지 세상 뜨고 아이는 갓난앤데
삼대의 이름이 군적에 실렸구나.
억울함 하소차니 문지기는 범과 같고
이정里正은 고래고래 소마저 끌고 갔네.
칼 갈아 뛰어들자 피가 온통 낭자터니
아들 낳아 곤경 당함 제 혼자 한탄한다.

-중략-

부잣집은 일 년 내내 풍악을 울리면서
쌀 한 톨 배 한 치도 바치지 않는구나.
다 같은 백성인데 어찌 이리 불공평한가.
객창에서 자꾸만 시구편(鳲鳩篇) 읊는다네.

▲ 엄계옥 시인

우리의 역사요, 조상들의 이야기다. 조선시대 세금 중에 백골징포란 것이 있었다. 사람이 죽어서 동사무소에 사망 신고를 하러가면 직원이 접수는 받지 않고 죽은 사람 앞으로 계속 세금 고지서를 보내는 것을 말한다. 황구첨정이란 것은 갓 태어난 아기에게 징집통지서를 보내는 것을 말한다. 이미 세상을 떠난 아버지 군포도 꼬박꼬박 내던 터였다. 갓 태어난 핏덩이에게까지 군포 독촉을 하다 군포대신 소까지 끌고 가버렸으니. 울분에 찬 가장은 스스로 양근(陽根)이 죄라며 거세해버린다. 삼정문란이 판치던 시대이야기다. 왜란에 그렇게 당하고서도 이 모양이니. 다산이 강진 유배 초기에 노전갈밭 마을에 사는 백성의 이야기를 듣고 쓴 것(정민), 정자에 머물며 풍류나 읊어대던 시류에 비하면 이보다 더 좋은 시 쓰기의 본보기는 없다.

 

저작권자 © 경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