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김하기 그림 이상열

 

광개토태왕은 여옥에게 겨눴던 칼을 거두고 하령왕의 칼에 죽은 고상무의 동생 고상지를 불렀다.

“고상지 장군!”

“예, 폐하.”

“고상지! 네가 대가야의 도독을 맡아 가야 십이국을 다스리되, 왕비를 가야의 국모로 모셔라. 장차 왕비가 출산하면 아이는 반드시 죽이고 왕비는 고구려의 국내성으로 보내라.”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광개토태왕이 즉위한 지 4년. 그동안 백여 차례 전투에서 태왕의 보기군은 백전백승했으나 단 한 번 가야의 하령왕의 군대에게 패했다. 용맹한 하령왕과 지혜로운 왕비의 뱃속에 있는 아이마저 살리면 가야의 범이 자라 장차 양호지환을 당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태왕은 하령의 목을 대정전 궐문에 높이 건 뒤 모여든 가야의 문무백관과 백성에게 말했다.

“너희 가야인들은 들어라. 짐의 은택은 위로는 황천에 미치고, 짐의 위무는 북으로는 숙신부터 남으로 삼한까지, 서로는 거란부터 동으로는 예맥까지 사해에 떨친다. 누구든 짐을 존숭하는 자는 살리고 짐에게 거역하는 자는 삼족을 멸한다. 대역죄인 하령처럼 짐과 고구려를 능멸하는 자는 참수해 장대에 매달되, 여옥 왕비처럼 짐에게 복종하는 자는 대대에 은전을 베푼다. 모두 대가야 도독 고상지와 국모 여옥 왕비를 짐을 섬기듯 하고, 함부로 고구려를 능멸하는 일이 없도록 하라!”

“예.”

대가야의 백성들은 일제히 광개토태왕에게 엎드려 절했다.

광개토태왕은 남방원정에서 대승하고 고구려의 국도 국내성으로 개선했다. 국도의 중앙에 있는 환도성에는 태왕과 만조백관과 궁인들과 고구려인들이 장화황후의 출산을 기다렸다. 태왕이 만삭이 된 황후를 보니 가야의 왕비 여옥이 생각났다.

‘여옥도 지금쯤 출산을 하겠지.’

태왕은 매정하게 출산하자마자 갓난아이를 죽이라고 한 것이 왠지 마음에 걸렸다. 혹시 그 일 때문에 자신의 아이의 출산에게도 영향을 미칠까봐 일말의 염려가 생겼다. 그러나 영락4년(394) 6월15일 환도성 교상전에서 태자가 건강하게 태어나니, 태왕은 뛸 듯이 기뻐했다. 광개토태왕은 갓난아이를 안고 말했다.

“거련, 우룰룰루. 네가 태어난 오늘이 내 생애에서 가장 기쁜 날이구나. 이 아비는 천하를 정복할 테니 너는 천하를 경영하여라. 고구려 왕실과 사해 신민의 복이 실로 너에게 달려 있도다.”

우리말 어원연구 아비, 아버지는 산스크리트어-영어사전에 avi, avuji, father라고 나온다. 아비, 아부지는 우리말 사투리로 강상원 박사는 우리말의 사투리가 실담어의 표준어라고 말한다. 사투리는 산스크리트어 kshatria에서 나온 말로 왕족어(royal language)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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