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적 어려움과 인간관계의 단절 등
얼떨결에 ‘나이들어 슬픈 사회’ 도래
장수가 축복이 되도록 사회안전망 절실

▲ 이태철 논설위원

‘장수’가 축복인 시대가 있었다. 태어나서 60년만에 맞는 생일인 환갑에는 잔치까지 했다. 환갑만큼은 아니지만 그 이듬해 생일에도 진갑잔치를 했다. 장수의 축복은 70세(고희잔치), 77세(희수잔치), 88세(미수잔치)에도 이어졌다. 그렇지만 이젠 옛날이야기가 됐다. 지금의 장수엔 ‘고독’ ‘질병’ ‘가난’이라는 리스크가 따른다. 준비되지 않은 채 얼떨결에 맞는 장수는 오랫동안 홀로 살다가 쓸쓸히 죽는 것을 의미, 축복보다 공포에 가까울지도 모른다.

노인 인구가 많은 일본에서는 ‘무연사회(無緣社會)’라는 말과 ‘고독사(孤獨死)’라는 말이 흔히 쓰인다. 고령화와 저출산, 개인주의로 인한 사회 안전망 해체가 가져온 삭막한 현실이 담겨있다. 노인국가 진입을 앞두고 있는 우리나라도 비슷한 과정을 겪고 있다. ‘은둔형 외톨이’가 늘어나는 것처럼 사람 사이의 관계가 없는 사회에서 아무도 모른채 홀로 죽어가는 장수의 공포가 ‘나이들어 슬픈 사회’를 만들어 가고 있는 것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2000년 65세 이상 노인인구 비율이 7.2%로 ‘고령화사회’에 진입한데 이어 내년에는 ‘고령사회’(노인인구 비율 14%), 2026년에는 ‘초고령사회’(노인인구 비율 20%)에 도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고령화사회에 진입한 지 26년 만에 초고령사회에 이르는 셈이다. 과거 고령화의 선두주자로 꼽혔던 일본이 1970년 고령화사회 진입 후 초고령사회(2006년)가 되는 데 36년 걸린 것보다 10년이나 앞선 것이다.

그러나 대비는 턱없이 부족하다. 노인빈곤율만 봐도 알 수 있다. 통계청, 한국은행, 금융감독원의 ‘가계금융 복지조사’ 결과를 보면 2015년 우리나라의 노인빈곤율은 61.7%로 절반 이상이 가난에 시달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1~10%를 웃도는 노르웨이나 네덜란드, 영국, 핀란드 등 복지가 잘 갖춰진 선진국과는 비교도 안될 정도다.

암담하기는 예비 노인세대도 마찬가지다. 38~63세 중·노년 저소득층 10명 중 8명은 65세가 되도 국민연금은 물론 개인연금이나 퇴직연금도 받지 못하는 노후소득 사각지대에 놓일 것이라는 분석결과다. 감사원의 ‘고령사회 대비 노후소득보장체계 성과분석’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보건사회연구원(보사연)에 의뢰, 1954~1979년 출생자를 대상으로 소득 분위별로 연금 수령 여부를 추정한 결과 이들 연령층이 65세 이상에 이르렀을 때 국민연금이나 개인연금, 퇴직연금 가운데 어느 하나의 연금이라도 받는 공·사적연금 수급자 비율은 최하위소득층인 소득 1분위(소득 20% 이하)의 경우 17.9%에 불과했다. 10명 중 8명 이상인 82.1%는 아무런 연금도 수급하지 못하는 무연금자 신세가 될 것이라는 추정이다. 소득 2분위(소득 20~40%)도 연금수급 비율이 48.1%에 그쳐 노인빈곤 문제를 우려케 했다.

이는 가족이나 이웃과 교류하지 않고 나홀로 지내다 죽음을 맞는 노인들의 고독사 문제와도 연관된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의 무연고 사망자는 1232명으로 이 중 65세 이상 노인이 427명(34.6%)이었다. 경제적 어려움과 인간관계 단절, 우울증 등 정신질환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생애주기별 정신건강 수준과 정신건강 지원 현황’ 보고서에서 나타난 70대 이상 노인의 우울지표(16.7%)와 자살 생각률(8.5%)에서도 잘 드러나고 있다. 노인인구 비중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는 울산의 미래 사회는 어떨지 참으로 궁금해진다. 이태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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