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차형석 경제부 기자

지난달 20일 울산대학교 체육관에서 열린 ‘2017 현대·기아자동차 협력사 채용박람회 울산·경주권 행사’에서는 예년의 행사때와는 사뭇 다른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20~30대 젊은층 구직자들 뿐 아니라 나이가 지긋한 50~60대 중장년층 구직자들도 삼삼오오 눈에 띄었고 이들은 젊은 구직자들 사이에서 활발히 구직활동을 벌였다. 무엇보다 이들 중장년층 구직자들의 상당수가 자동차업종 출신이 아닌 조선업종 출신이라는 게 특이했다.

현장에서 만난 50대 후반의 현대중공업 출신 퇴직자는 고등학교 졸업하고 현대중공업에 입사해 40년 가까이 주물계통에만 근무했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그는 “선박 프로펠러 만드는 것 만큼은 누구에도 뒤지지 않을 만큼 자신있다. 아직 충분히 일 할 수 있고, 손재주도 녹슬지 않았다. 하지만 조선업종에서는 갈 곳이 없어 그래도 비슷한 금속계통의 자동차업종에 취직할 수 있지 않을까 해서 오게 되었다”고 했다.

함께 온 60대 초반의 현대중공업 출신 퇴직자도 해양플랜트사업부 한 분야에서 기계 시운전만 36년간 근무한 기능인으로, 그 역시 퇴직 후 자신의 재능을 살려 어떤 분야든 일을 해보고 싶다고 간절한 바람을 드러냈다. 하지만 이들의 바람과는 달리 자동차산업쪽에서는 연관분야가 많지 않은데다 업체들이 채용하는 인원도 한정돼 있어 실상 ‘바늘구멍’과도 같은 게 현실이다.

최근 몇 년 새 조선업 불황의 여파에 따른 대규모 구조조정과 베이비부머들의 정년퇴직 등으로 지역사회에 조선분야 퇴직자들이 쏟아지고 있으나 정작 이들이 갈곳은 마땅치 않은 실정이다. 과거 조선 퇴직자(기능공)들은 퇴직 후 본사 또는 협력업체 등에서 계약직(촉탁직)으로 근무를 하며 은퇴 후 경제활동과 기술·노하우 전수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았으나 조선경기 침체가 장기화 되면서 이제는 이들의 설자리가 없어진 것이다. 이들처럼 새로운 분야에 문을 두드려 운 좋게 취직하는 경우도 있으나 극소수이고, 상당수는 어쩔 수 없이 자영업 창업 등으로 내몰리거나 ‘백수 신세’로 전락하고 있다.

울산의 3대 주력산업의 하나인 조선업은 울산은 물론 우리나라 경제발전을 이끈 한 축으로, 오랜 기간 조선산업 현장을 지켜온 조선분야 퇴직자들은 용접 등 조선 각 분야에서 기능인을 넘어 장인(匠人)으로 평가받고 있다. 지역 산업계 한 관계자는 “다른 업종도 그렇지만 특히 조선분야 숙련공들의 기술과 노하우는 하루 아침에 얻을 수 있는 게 아니다. 30여년간 한 분야에서 장인의 정신으로 쌓은 것으로, 이들의 기술과 노하우가 전수되지 않고 그냥 사장된다면 너무 안타까운 일이다”고 아쉬워 했다. 일부 퇴직 기술자들은 중국이나 베트남 등 일자리를 찾아 해외로 발길을 돌리는 것으로도 전해졌다.

이에 따라 울산시도 지난해부터 ‘조선분야 종사자 기술고도화 및 석유화학업종 재취업 지원사업’을 통해 퇴직자들의 재취업 및 생계안정을 돕고 있고, 최근에는 S-OIL과 협약을 체결하고 S-OIL이 울산에 짓고 있는 석유화학 복합시설 건설현장에 조선업 퇴직자를 우선 고용키로 하는 등 팔을 걷어부치고 있다.

하지만 지자체 차원의 이러한 재취업 지원사업과 단기성 프로젝트 공사현장 투입 등으로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고 업계에서는 입을 모은다. 이제는 정부가 나서 쏟아지는 조선 퇴직자들 활용 방안을 정책적으로 모색해 이들의 기술과 노하우가 사장되지 않고 산업현장에 계속 이식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찾아야 할 것이다. 차형석 경제부 기자 stevecha@ks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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