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김하기
그림 이상열

 

“이런, 군신지댁이 그런 불행한 일을 겪은 걸 몰랐네.”

박지 집사는 수경의 유산에 대해 유감을 표명했다.

‘하긴 수경의 얼굴은 연지에 두둥실 피어오른 연꽃 같았지. 헌데 지금은 그늘에 말린 창포처럼 수척하구나.’

박지는 항간에 떠도는 유언비어를 떠올렸다. 도독이 죽였다는 왕비의 갓난아이는 실상 왕비의 아이가 아니며 바꿔치기 한 중신의 아이였다는 괴 소문이었다.

그렇다면 죽은 아이는 출산 기일이 비슷한 군신지 후누와 수경의 아이일 수도 있다. 후누 정도의 인물이라면 하령왕을 위해 죽을 수도 있는 충신이다. 긴장의 끈을 놓지 말고 알아보아야 한다.

다섯 사람은 고배에 술을 가득 채우고 잔을 들었다.

박지가 말했다.

“후누장군의 생일을 축하하며 건배!”

“건배!”

생일 술자리의 분위기는 화기애애했다.

집사 박지가 잔을 높이 들며 말했다.

“사백년 묵은 가야의 하늘과 산이 새롭게 열리니 이 얼마나 기쁜 일인가!”

“물론입니다. 위대한 태왕과 도독, 집사님의 통치 하에 가야는 일신우일신할 것입니다.”

“저희는 고구려의 율령 아래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법적으로 가야인이 아니라 고구려 신민입니다.”

“광개토태왕은 고구려 가야 백제 신라 사국을 통일한 통일군주이십니다. 우리 가야철도 더 많이 수출할 길이 열렸고, 백성들의 생활도 그만큼 윤택해질 것입니다.”

박지는 신지들의 말에 기분이 좋았다. 그는 친고구려파로 이번 고구려와의 전쟁에 반대해 투옥까지 되었다가, 종전 후 고상지 도독으로부터 대가야의 집사직을 임명받았다.

 

박지가 말했다.

“뇌질왕가는 완전히 끝장났어.”

“씨가 말라버렸죠.”

“소신들은 고구려 고씨왕조의 신하들입죠.”

모두들 권커니잣커니 하면서 술이 거나하게 취했다.

술동이가 바닥을 드러낼 즈음, 후누가 창밖을 보며 뚜벅 말했다.

“저길 보시오. 겨울나무 꼭대기에 까치집 하나, 까치감 한 개가 남아 있군요.”

그의 말에 모두들 창밖을 보았다. 과연 어둑신한 하늘 아래 감나무 가지에 까치집이 하나 걸려있고, 그 위에 빨간 감이 하나 달려 있었다. 모두들 그 풍경을 보며 신기해하는데 박지만은 눈을 가냘프게 뜨고 고개를 외로 틀었다.

‘겨울나무 꼭대기에 까치집 하나, 까치감 한 개가 남아 있다?’

우리말 어원연구

죽은, 죽다, 죽고 싶다, jugupsita(주구프시타): abhorring, feel tired. 출처, <조선고어실담어주석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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