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은경 울산발전연구원 문화재센터장

일 년을 손꼽아 기다리다 맞이하는 여름휴가. 그 꿈같은 여름휴가 때 뭘 챙겨가나 하는 호기심으로 옛사람들의 여름을 살펴보았다. 옛 선비들이야 산천유람도 그 덕목 중의 한가지였으니 지금과는 달랐을 터. 그럼에도 가끔 손에 들고 다니는 물건이 출토되면 옛날 사람들도 이런 걸 가지고 다녔구나 싶다. 그 중 하나가 ‘자라병(扁甁)’이다.

마치 자라처럼 생긴 이 병은 6세기대인 삼국시대부터 만들었다. 20cm가 채 되지 않는 소형이다. 아래 위 판을 붙인 둥글넓적한 모양이다. 세워서 보관하거나 가지고 다닐 수 있도록 위쪽에 주둥이를 붙였다. 야외에서 마실 물이나 술을 담는 용기로 제격이겠다. 몸체 사방에 구멍 뚫은 네 귀를 만들어 끈을 꿰어 들고 다닐 수 있게 하거나, 삼끈으로 망을 만들어 그 안에 담아 메고 다니기도 했다.

삼국시대에는 토기 재질의 자라병을 만들었다. 조선 초기인 15~16세기에는 청자, 분청사기, 백자, 옹기 등으로 재질이 다양해졌다.

‘자라병’이라는 이름을 들으면 우리가 한번쯤은 어디서 봤음직한 유물이 연상되는데 바로 국보 260호로 지정된 분청사기박지철채모란문자라병(粉靑沙器剝地鐵彩牡丹文扁甁)이다.

▲ 자라병(扁甁), 담양월전고분출토, 삼국시대, 높이 17cm, <호남의 발굴 유적ㆍ유물>에서

높이가 9.4cm, 길이가 23cm이다. 표면에 장식된 박지기법의 모란문이 자라병 상하면에 시원스럽고도 호탕하게 시문되어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데 호남지방에서 제작된 유물로 추정한다.

실생활에서 사용된 자라병은 주로 옹기로 제작되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옹기의 특성상 내구성이 좋고 여름에 직사광선 등을 조절할 수 있어서 신선도를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자라병의 안정적인 외형과 소박한 재질은 편안하고 친근함을 준다. 고대인들의 심성이 느껴지는 유물이다. 더운 여름 길을 떠날 때 허리춤에 자라병을 하나씩 메고 나서는 그들. 물이든 술이든 목마른 이들에게 꿀맛과도 같은 달콤한 한모금이었겠지. 배은경 울산발전연구원 문화재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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