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호준 울산대학교 기계공학부 겸임교수 전 현대중공업 조선사업본부 상무

주지하다시피, 한국 산업수도인 울산의 3대 주력산업은 조선해양산업, 자동차산업, 석유화학산업이다. 조선해양산업의 경우 1970년대 초 조선입국(造船立國) 기치 아래 1·2차 오일쇼크를 겪으면서도 조선 관련 설계·생산·기술의 혁신 노력에 힘입어 1983년 현대중공업이 선박건조량 세계 최대 조선소로 성장했다. 선박 품질면에서도 세계 최고로 인정받으면서 울산이 세계 조선의 메카로 자리잡았다. 2000년도에는 한국 조선소의 선박건조량이 일본, 중국, 유럽을 제치고 세계 1등 조선국이 되었다.

조선해양산업은 통상 장치산업으로 일컬어지는 석유화학산업과는 달리, 계획생산이 아닌 발주처 주문에 의한 복잡한 공정의 다품종 소량 생산방식이다. 이에 따라 적정 규모의 기술 및 기능인력 확보가 필수적이어서 고용효과도 높고, 전후방 산업에 생산파급효과도 높다. 거시적으로는 세계 해운 시황과 오일 및 가스 시황의 영향을 받기 때문에 중장기적으로 경기가 선순환되는 양상을 보인다.

우리 해양플랜트산업 분야의 핵심기술인 설계 엔지니어링 기술 및 주요장비/시스템에 대한 원천기술력이 미흡하다. 이러한 가운데 세계 경기가 침체되자 각 조선소별 매출지향 일괄수주방식(턴키방식)의 과당경쟁으로 저가수주가 발생하면서 한국 조선해양산업은 위기를 맞고 있다. 이로 인해 각 조선소는 물론 조선관련 협력업체, 기자재업체는 인력과 설비 감축에 나서면서 고경력 퇴직기술자 및 기능인력의 탈울산 현상이 가속화되고 있다.

하지만 해양플랜트산업은 조선기술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조선산업의 경쟁력을 뒷받침한다. 자체 설계력을 보유하면 조선산업과 같이 장기간 세계 최고 수준의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다. 또한 석유화학플랜트산업과도 많은 연관성이 있다. 우리나라 조선산업은 설계, 건조 등 여러 분야에서 확고한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어 기술인력만 갖춘다면 해양플랜트산업에서도 세계를 제패할 수 있다.

해양플랜트산업은 전체 공정을 엔지니어링 설계-구매/조달-생산-설치(EPCI) 단계로 구분할 때 엔지니어링 단계에서 가장 큰 이익을 창출할 수 있다. 해양플랜트산업의 핵심기술은 설계 엔지니어링 기술이지만, 국내 조선소는 아직까지 초기설계 및 기본설계(FEED)를 포함한 상세 설계기술을 전적으로 해외에 의존하고 있다. 중장기적 측면에서 국내 해양플랜트산업의 국제경쟁력 강화를 위해서는 자체 설계기술력 확보를 위한 해양플랜트 설계 전문인력 양성이 매우 시급하다.

20세기 초 조선강국이었던 스웨덴의 말뫼지역 코쿰스조선소가 2002년 문을 닫으면서 1500t 크레인을 단돈 1달러를 받고 현대중공업에 넘겼다. 당시 스웨덴 국영방송은 이 크레인을 울산으로 이전할 때 항구에서 수많은 말뫼시민들이 울었다고 보도했다. 스웨덴 조선업의 몰락을 상징한 ‘말뫼의 눈물(Tears of Malmoe)’이다. ‘말뫼의 눈물’이 울산에서 재현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조선해양플랜트산업 분야 국제경쟁력 강화를 위해서는 핵심원천기술 확보와 함께 조선소는 물론 협력업체, 관련 기자재업체의 퇴직기술인력의 해외유출 방지와 재취업, 재교육을 통한 역량배양이 필요하다. 사정이 이러한데도 부산·경남 등 타 도시에는 이미 부분적으로 구축되어 있는 조선해양플랜트관련 기자재조합, 기자재연구원, 각종 클라스터 등과 같은 조선해양플랜트 관련 하부구조(Infrastructure)가 울산에는 구축돼 있지 않다. 그나마 현재 울산 남구 두왕동에 울산대학교, 울산과학대, 유니스트, 화학연구원 등이 들어서는 울산산학융합지구가 조성 중인 것은 다행스럽다. 울산의 주력산업인 조선해양산업이 석유화학플랜트산업과 연계해 발전할 수 있도록 이 산학융합지구에 산·학·연·관 협력으로 ‘울산 조선해양플랜트 기술혁신센터’를 설립하여 운영할 것을 제안한다.

배호준 울산대학교 기계공학부 겸임교수 전 현대중공업 조선사업본부 상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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