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김하기 그림 이상열

 

광개토태왕은 오늘 밤 처음으로 소후궁을 찾았다. 그동안 거련의 병 때문에 소후궁을 찾을 경황이 아니었다. 천신녀와 무당의 해원굿으로 거련의 병세는 호전되었고, 내일 떠날 비려 원정을 앞두고 가야에서 올라 온 여옥을 만나야겠다는 마음을 먹었다.

태왕은 소후궁에서 여옥을 만났다.

여옥이 태왕을 외면하며 차갑게 말했다.

“야심한 시각에 어인 행차이십니까?”

“소후와 함께 밤길을 걷고 싶어 왔소.”

“내일 비려 원정이 있다고 들었는데 미천한 여자와 산책할 만큼 한가하지 않을 텐데요.”

“어쨌든 가야에서의 일들은 미안하오. 이제 고구려 왕궁으로 왔으니 한 식구가 되어 잘 지냅시다.”

“…….”

여옥은 가야궁의 대정전 앞에서 하령왕의 척족들이 꽃잎처럼 목이 떨어지던 그 장면이 아직도 생생해 몸이 떨렸다.

‘헌데 가족을 살생한 이 남자는 아무렇지도 않게 한 식구가 되어 잘 지내자고 하는구나. 권력이란 무자비하면서도 참으로 뻔뻔한 것이다.’

태왕은 여옥을 소수림의 숲으로 이끌었다. 소수림은 부왕의 업적을 기려 이름을 붙인 고구려의 숲이다. 고원에 있는 평지로 삼림이 우거져 말을 타고도 전렵이 가능한 곳이어서 왕실에서 자주 이용하는 사냥터였다. 그 한 가운데 석축으로 쌓은 거대한 점성대가 있었다.

▲ 그림 이상열

태왕이 밤하늘을 쳐다보며 말했다.

“고구려 별들이 너무 맑고 밝지 않소?”

“…가야의 별밤은 이보다 훨씬 더 아름다워요.”

“여전히 가야를 잊지 못하나 보군.”

“여우도 죽을 때는 태어난 구릉으로 머리를 둔다는데 사람이 어찌 고향을 잊겠어요.”

태왕은 소수림 숲에서 점성대로 난 길을 걸으며 말했다.

“그래서 가야가 보이는 곳에 그대와의 신방을 꾸며 놓았소.”

태왕은 여옥과 함께 계단을 올라 점성대 꼭대기에 있는 관측대로 갔다. 망통을 들고 밤하늘의 별자리를 관찰하던 천문박사와 시녀들이 태왕과 소후를 맞아 주었다.

천문박사는 태왕에게 기분 좋게 이번 원정의 승리를 점쳐준 뒤 시녀들과 함께 점성대에서 내려갔다.

둘은 관측대에 신방으로 꾸며진 침실에 들어갔다.

침실은 작지만 아담하게 꾸며졌다. 침실 벽면은 고구려의 천산대렵도와 도자기로 꾸며져 있고, 하얀 물비단이 드리워진 침대는 흑단목과 보석으로 꾸며져 있었다. 태왕은 그녀의 손을 잡고 침대로 이끌었다. 가문의 원수와의 첫날 밤, 거역할 수 없는 자리였다.

우리말 어원연구 무당. 【S】medhadangh(메드하당), medha(현자, 神人) + dangh(두들겨 패다. 질책하다.) 【E】the wise man of supernatural power should strike and reproach the evil spirit. 귀신을 다그치는 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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