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90%가 질병을 앓고 있지만
충분한 휴식·치료 받을 시간 없어
시기놓쳐 병을 키우는 경우도 많아

▲ 이호진 세민병원 부원장

한 취업 전문 포털 사이트에서 직장인들을 대상으로 질병 여부를 조사한 결과 전체의 약 90% 정도가 질병을 앓고 있으며, 평균적으로 5개 정도의 질병에 시달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표적인 사례를 들어보자면 사무직에 종사하는 직장인들은 컴퓨터를 장시간 사용하는 경우가 많은 까닭에 거북목증후군, 손목터널증후군, 근막통증후군 등 컴퓨터 관련 질환에 시달리는 이가 적지 않다. 컴퓨터를 쓰지 않으면 좋겠지만 일의 특성 상 컴퓨터 없이는 업무가 제대로 되지 않는다.

가장 좋은 방법은 병원 치료와 일을 병행하는 것이겠지만 윗사람 눈치에 동료들 눈치까지 병원에 갈 시간이 없다는 것이 문제다. 그렇다고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바른 자세를 유지하도록 늘 신경을 쓰고 병원에 가지 못하더라도 충분한 휴식을 취한다면 컴퓨터로 인한 직업병의 증상을 조금이나마 완화할 수 있다.

여러 질병에 노출되어 있는 것은 비단 사무직 종사자뿐만 아니다. 직업별로, 사업장별로 직장인들이 앓고 있는 직업병은 매우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다. 문제는 한국 사회의 직장인들은 몸이 아파도 아프다고 항변하거나 제대로 쉬지 못하는 안타까운 현실에 놓여 있다는 사실이다.

실직에 대한 두려움, 승진 누락, 급여 삭감 등 다양한 이유들로 인해 몸이 아프거나 피곤한데도 불구하고 필요 이상으로 직장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것을 프리젠티즘(presenteeism) 현상이라 부른다. 한국노총이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이 프리젠티즘으로 인해 건강문제로 일에 부정적인 영향을 받는 직장인이 절반 이상인 57.4%로 집계되기도 했다.

한국 사회의 직장인은 몸이 아파도 제대로 된 휴식이나 치료를 위해 할애할 시간이 터무니없이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과도한 업무량에 시달리느라, 하루 종일 책상 앞에서 눈이 아프도록 모니터를 쳐다보느라, 고된 강도의 일 때문에 무리하느라 몸이 아프고, 병에 걸렸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아는 이들이 바로 직장인들이다.

혹자는 직장에서의 일 때문에 아픈 것이라면 산재보험 처리를 하면 되지 않느냐고 되묻겠지만 직장인이 회사에서 얻은 질병을 이유로 산재신청을 하게 되면 그 회사는 고용노동부의 근로감독을 받아야 하고 감독 받을 준비를 하느라 회사는 바빠질 수밖에 없다. 회사 눈치에 일이 배가 되어버린 동료들 눈치까지 볼 바엔 그냥 자기 주머닛돈으로 건강보험 처리를 하는 것이 마음 편하다는 것이다.

그나마 자기 돈과 시간을 들여서 치료를 받을 수 있는 경우는 양반이다. 잦은 야근과 과도한 업무량으로 인한 스트레스, 일 때문에 바빠 끼니조차도 제 때 챙겨먹지 못하는 잘못된 식생활 등에 이르기까지 질병을 유발할 수 있는 너무나 많은 요소에 노출돼 있음에도 불구하고 치료시기를 놓쳐 병을 키우는 경우도 허다하다.

아파도 직장에 나가서 일을 하는 것이 바람직한 직장생활이고, 일 때문에 병이 나도 제대로 된 산재처리나 회사 측의 보호를 받을 수 없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직장 문화가 바뀌지 않으면 아파도 아프다고 말할 수 없는 직장인의 슬픈 노래는 계속 들려올 것이다.

새 정부가 들어서고 일자리 창출을 비롯해 노동환경 개선을 위한 활발한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수많은 직업병에 노출돼 있는 직장인들, 업무 때문에 얻은 병을 숨겨야만 직장 생활을 계속 할 수 있는 직장인들의 처우 개선에도 힘을 쏟아주길 바란다.

이호진 세민병원 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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