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억의 풍경박선영作 - ‘기억의 풍경’ 연작은 기억을 통해 과거와 조우하며 현재를 담는 작업이다. 일상 속에서 체화된 어떤 기억과 느낌을 현재진행형인 작업 속에서 끊임없이 일깨워 나가는 과정이다.

암수술차 서울행 기차를 타고 떠나신
아버지를 배웅했던 학성공원 앞 육교
육교의 철거와 함께 추억도 허물어져

‘추억’이라는 단어는 ‘쌓이다’라는 서술어와 곧 잘 어울려 한 문장을 이룬다. 일련의 추억들은 우리의 의식 속에 차곡차곡 쌓였다가 이따금 의식 밖으로 강제 소환되어 시간의 알고리즘을 형성하며 우리의 감정선을 자극시킨다. 한편 이 ‘추억’이라는 단어는 ‘허물어지다’라는 서술어와도 가끔 어울려 한 문장을 이루기도 하는데, 그럴 때마다 우리의 추억을 허물려는 시도는 대개 나의 의지가 아닌 다른 외부의 개입이 작용하여 자행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렇듯 나의 의식 속에 자리 잡은 추억을 허물려는 외부의 개입을 하나 꼽으라면 나는 바로 도시의 육교를 철거하는 작업을 꼽겠다.

육교가 사라지고 있다. 사실 육교는 사라져야 한다. 몸이 불편한 보행 약자들에게 육교의 존재는 일종의 심리적 폭행이며 이를 방기하는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많이 나아지고는 있다지만 아직 우리의 도로교통은 보행자 보다는 차량 중심의 흐름으로 질서가 암묵적으로 유지되는 것 같다. 결국 살기 위해서는 보행자들이 먼저 인내하며 눈치껏 조심해야한다.

프랑스 파리에 갔을 때다. 파리에는 육교가 없을뿐더러 우리나라처럼 운전자들이 잘 볼 수 있도록 횡단보도 위 허공에 매단 차량용 신호등도 없었다. 도시 미관상 도로 위에 설치하지 않고 대신 횡단보도 양 끝 보행자용 신호등 옆에 별도로 차량용 신호등을 도로를 향해 비스듬히 설치한 것이 특이했다. 도로가 좁은 파리에서는 만약 큰 트럭이나 버스 뒤를 따라가며 운전하다가는 자칫 차량용 신호등을 확인하기가 힘들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므로 파리의 운전자들은 횡단보도 앞에서 겸손모드로 자연스레 속도를 늦출 수밖에 없고 또 차량용 신호를 보기 위해서 고개를 돌리면 자연스레 보행자의 위치나 상황까지 파악할 수 있어 이러한 신호등의 위치 선정은 보행자 보호에까지 도움이 되는 괜찮은 시스템이라는 생각이 들었으며 파리 도로교통의 흐름이 주로 보행자를 중심으로 질서가 유지되고 있는 것이 인상 깊었다. 그러므로 보행자 중심의 도로교통 흐름을 위해서라도 육교는 점점 사라지는 것이 맞다. 그러나 마음 한편으로는 육교가 사라지면서 나의 육교 위에서의 추억이 함께 사라지는 것은 아닌지 서운한 감정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지금은 사라진 한 육교를 추억한다. 나는 학성공원 앞 육교 위를 참 많이도 오르락내리락 했었다. 정신줄 놓으며 길을 안전하게 건널 수 있는 나에게는 매우 유익한 구조물이었다. 그 육교는 아래로 철로와 차로가 같이 통행하는 흔치 않은 육교였는데 육교 아래로 기차가 지나갈 때는 땅의 진동이 육교를 흔들고 그 육교의 흔들림이 내 몸까지 그대로 전달되어 잠시 걸음을 멈칫거리게 만들었었다. 육교 위에서 내 심장박동은 육교 아래에서 보다 더 빨랐으나 육교 위에서의 시간은 육교아래보다 더 더디게 지나갔었다. 아니 육교 위에서 시간을 나는 더 잡아 붙들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사실 그 육교위에서 나는 마지막으로 아버지를 배웅했었다.

내가 고등학생 때 암으로 더 이상 손쓸 수 없이 나빠지신 아버지는 서울의 큰 병원으로 가셔야했다. 학성공원 육교아래 철로로 하루에 몇 번 서울로 향하는 새마을호 열차가 지나 다녔는데 당시 몸이 허약한 환자들이 울산에서 서울로 가장 편하게 갈 수 있는 방법은 새마을호 열차의 침대칸을 이용하는 것이었다. 그날 아침 나는 학교 갈 준비에 바빠 그만 서울로 가시는 아버지와 제대로 인사를 나누지 못해 아침 내내 마음이 불편했다. 그 때의 예리했던 불편한 직감은 살면서 중요한 순간마다 나의 불편한 직감에 의존해 결정을 내리고 마는 몹쓸 병폐를 낳고 말았다.

나는 서둘러 열차 시간에 맞춰 등굣길에 그 육교 위로 올라갔다. 그리고 아버지가 누워계신 새마을호 열차가 육교 밑 내 발밑으로 지나가자 육교는 변함없이 진동하며 온몸으로 흐느끼듯 나를 흔들었고 나는 마지막 인사하듯 ‘아버지, 잘 다녀오세요!’ 혼잣말을 내뱉으며 열차가 내 시야에서 멀어질 때까지 육교 위에서 조용히 울먹였다. 결국 그 인사는 마지막 인사가 되어버렸고 그 짧은 몇 초의 시간들이 내게 몇 시간의 궤적으로 내 기억 속에 오래 남게 되었다. 그렇게 아버지를 보내고 난 후 나는 그 시간의 궤적을 쫓아다니며 그 육교 위에서 시간을 보내는 일이 많아졌다.

그러나 몇 년 후 철로가 이설되면서 결국 육교도 철거되었고 육교 위에 올라 그 때의 시간을 추억하는 내 모습도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허물어져갔다. 비록 육교는 철거되었고 내 추억마저 가물가물 철거되려는 위기를 맞고 있지만 한 가지 마음에 위안이 되는 것은 학성공원 육교가 있던 자리 맞은 편 조그만 구멍가게 하나가 ‘육교슈퍼’라는 이름으로 기념비처럼 남아 있다는 것이다. 아마도 지나가는 사람들 중 자신만이 알고 있는 육교에서의 추억을 간직한 사람 몇 명이라도 이 군대의 암구호 같은 뜬금없는 조합의 이름을 가진 구멍가게를 보고 한번쯤 사라진 육교의 모습을 상상하다보면 우리의 추억들이 조금 더 연장되지는 않을까? ‘아! 그 때, 이 자리에 육교가 하나 있었지!’라며….

▲ 박선영씨

■ 박선영씨는
·계명대학교 동양화과 졸업
·개인전 3회 및 단체 및 초대기획전 350여회
·(사)한국미술협회 이사 및 경주지부장
·경주디자인고등학교 학교운영위원장
·경주알천미술관·솔거미술관 운영위원
·경북도청·경주시청 작품소장
 

 

 

▲ 이원복씨

■ 이원복씨는
·울산 출생
·2014년 경상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 당선
·<수요시포럼> 동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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