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김하기 그림 이상열

 

태왕과 여옥은 식탁에 마주 앉아 밀랍에 불을 붙여 화촉을 밝혔다. 태왕이 장경호에 담긴 곡아주를 두 개의 작은 오리고배에 따랐다.

“곡아주는 고구려의 술이고 장경호와 오리고배는 가야의 도기그릇이오. 먼저 식탁 위에서 고구려와 가야가 만나고 있소. 자, 우리의 새로운 만남을 위해 건배.”

태왕이 고배를 들고 건배를 청하자, 여옥도 술잔을 들었다.

술잔이 비워지고 여옥의 볼이 붉은 자두처럼 발그레했다.

‘정녕 아름다운지고.’

태왕은 천하를 두루 다녔지만 여옥과 같은 미인을 보지 못했다.

여옥의 귀걸이가 창밖에 휘영청 걸려 있는 달빛에 흔들거리며 반짝였다. 황금빛 굽은 곡옥 귀걸이였다. 타래머리에 꽂은 소후의 봉잠도 별빛에 가늘게 흔들거렸다.

‘아, 가야 것들이 고구려 것보다 아름답구나.’

태왕이 여옥에게 말했다.

“소후, 참으로 아름답소.”

“…….”

“가야 하령의 여인에서 짐의 여인이 되어주오.”

“하령왕은 잊은 지 오래입니다. 하지만 가야는 잊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오늘 그대와의 신방을 환도성에서 제일 높은 이곳 점성대 꼭대기에 차린 것이오. 저길 보시오.”

▲ 그림 이상열

태왕이 가르친 곳은 동서남북 사방으로 난 창 중 남쪽 창이었다. 밤이지만 남쪽 창으로 눈맛이 시원한 하늘이 열려 있었다.

“고향 가야가 보이오?”

“삼천리나 떨어진 머나먼 곳인데 어찌 보이겠습니까?”

“내 눈에는 대가야와 소가야, 금관가야와 아라가야, 열두 가야가 다 보이오. 난 이곳에서 신안으로 사해에 펼쳐 있는 고구려의 땅과 신민을 다 보고 있소. 남창으로 가야, 백제, 신라와 왜를, 북창으로는 숙신과 거란을, 동창으로는 동부여와 동예를, 서창으로는 요동과 연을 내려다보면서 사해 신민을 다스리고 있소.”

“저는 폐하처럼 신안은 없지만 소후궁에서도 마음의 눈으로 가야산과 낙동강을 보곤 합니다.”

‘패전의 전리품이 되어 머나먼 곳으로 끌려왔구나. 지아비를 죽인 원수와 첫날밤을 치르게 되는 기구한 삶이다.’

여옥의 심안에는 어머니의 품처럼 다정하게 품어준 가야의 산하와, 가야사람들이 선명하게 비쳤다. 멀리서 가냘프고 애상한 공후 소리가 들렸다. 그녀의 속눈썹이 잔잔하게 떨리더니 그예 이슬 한 방울이 뚝 떨어져 내렸다.

우리말 어원연구 가야산의 유래: 항간에는 gaya가 범어(산스크리트)로 소이고 그래서 가야산의 원래 이름이 우두산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gaya는 산스크리트어로 코끼리이고, 가야산 봉우리 이름은 상왕봉(象王峰)으로 지금도 원뜻이 살아 있다. 필자는 가야가 가라에서 나왔고, 가라는 가락에서 나왔으며, 가락은 산스크리트어로 ga, gai: sing(노래), rak: taste(즐기다), gairak: to sing a song, dance rhythmically(노래하다, 흥겹게 춤추다)에서 나왔다고 본다. 낙동강은 가락의 동쪽에 흐르는 강이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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