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김하기 그림 이상열

 

여옥이 흘린 눈물방울이 가야 왕후의 옷깃을 적셨다. 둥근 옷깃의 홍포 저고리와 사과꽃빛 주름치마는 이슬을 머금은 동백꽃 같았다. 태왕이 옷을 벗기자 여옥은 고개를 외로 숙이며 몽실한 젖가슴을 두 손으로 가렸다. 하얀 고쟁이밖에 없는 그녀의 알몸은 아담하지만 늘씬했다. 그녀의 체향은 대나무 숲을 지나온 바람처럼 청신했다. 태왕의 등줄기에 소름이 돋고 아래쪽이 움틀 했다. 태왕도 옷을 벗고 여옥을 이끌어 침대에 눕히고 부드럽게 애무했다. 여옥의 하얀 속살은 가야의 곡옥처럼 반질하고 매끈했다.

태왕이 고쟁이를 벗기려 하자 여옥이 부드러운 손으로 까실한 태왕의 손을 물리며 말했다.

“폐하, 저의 눈물을 거두어 주시겠습니까?”

“암, 거두어 주리다.”

태왕은 안개가 걷힌 호수처럼 맑은 여옥의 눈망울을 바라보며 힘주어 말했다.

“천신녀가 해원굿을 한 뒤로 거련의 병이 나았다지요?”

“지금 회복 중이오. 그때 당신의 아이를 죽이지 말았어야 했는데…….”

태왕의 손이 여옥의 따뜻한 젖무덤 사이에서 잠시 길을 잃고 헤매었다.

▲ 그림 이상열

“후회하고 있나요?”

“후회하다마다. 아이를 죽이는 것은 내 방식이 아니오.”

“천신녀가 가야 아이 하나를 입양하지 않으면 거련이 또 아플 거라고 말했다지요.”

“무당의 말을 다 믿지는 않소. 하지만 거련을 위해서도, 소후를 위해서도 가야 아이를 왕궁으로 불러들이리다.”

“천애고아인 저에게 낯선 고구려 땅은 발목부터 시립니다. 저와 가야 아이를 지켜주소서.”

“나, 소후를 지킬 것을 약조하리다.”

“저는 오늘 밤 이후로 하늘 위와 하늘 아래, 오로지 폐하 한 분뿐입니다.”

“고맙소, 소후.”

가슴에서 헤매던 태왕의 손이 다시 아래로 왔다. 고쟁이가 끌러지자 박꽃 같은 하얀 속살이 드러났다. 곡옥처럼 매끈한 감촉이 손끝을 타고 팔목과 등뼈를 지나 온몸으로 퍼지며 내면 깊은 곳에 맹수 같이 웅크리고 있는 성욕을 불러내었다.

태왕의 성욕은 전쟁터에서 길들여졌다. 살은 짐승이 뜯어먹고 바람에 부서진 뼈들이 널려 있는 곳에서 욕망을 풀었다. 태왕은 전쟁을 시작하기 전, 더욱 맹렬한 욕망을 느꼈다. 그러나 여인과의 잠자리는 진정한 승자도 패자도 없는 끝없는 싸움터였다. 전리품에 대한 정복감은 일시적인 쾌락일 뿐, 벌거벗은 암컷과 수컷이 서로를 능욕함으로써 짐승으로 추락하는 허무와의 몸 섞음이었다.

태왕의 입술이 여옥의 입술에 포개지자 달빛에 달맞이꽃이 열리듯 그녀의 꽃잎이 벌어졌다. 꽃 내음의 숨결에 닻줄보다 더 팽팽해진 태왕의 몸이 시위를 떠났다. 점성대 위로 유성우가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렸다. 인간의 욕망이 땅 밑으로 추락하지 않고 하늘로 솟구쳐 성스런 천궁에 닿은 건 오늘밤이 처음이었다.

우리말 어원연구 시리다. 【S】siriya(시리야), cold, chilly in the hands.(손바닥이 차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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