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김하기 그림 이상열

 

고구려 거련 태자가 태어나던 날, 대가야에는 출산을 앞둔 여옥왕비가 친정인 적화로 가고 있었다. 고상지 도독과 열 명의 고구려 호위병이 철통같은 감시를 하는 가운데 가마는 고개를 넘고 개울을 건넜다.

고상지는 해가 저물기 전에 적화에 도착해야 한다며 가마채를 멘 가마꾼들을 채근했다. 가마는 어느새 적화마을 어귀까지 왔다.

여옥은 가마에 드리운 옥 주련을 걷고 하늘을 바라보았다. 기러기 떼가 날아간 가야산의 하늘은 핏빛으로 붉게 물들였다. 여옥은 남산만한 배를 감싸 안았다. 이제 세상 밖으로 나오려는 아이는 배안에서 우굴퉁부굴퉁 움직이다 톡톡 발길질을 했다.

여옥은 배를 움켜쥐고 가야산을 보며 원망의 눈물을 흘렸다.

‘정견모주님, 이다지도 매정하십니까. 그렇게도 치성을 드렸건만 끝내 이 둘째 아이도 죽이시는 겁니까. 왜 꽃가마를 꽃상여로 만드시는 겁니까.’

여옥은 배를 쓰다듬으며 뱃속의 아이에게 중얼거렸다.

‘가엽고 불쌍한 내 아이야. 아, 서산으로 넘어가는 붉은 노을처럼 너와 함께 저승으로 가자꾸나. 거기엔 네 형이 기다리고 있단다.’

▲ 그림 이상열

지네가 기어가는 듯한 굽은 오솔길을 지나자 고향 마을을 휘감아 도는 여울과 낯익은 농다리가 보였다. 어릴 땐 여울이 낙동강처럼 크게 보였고, 돌로 얼키설키 얹어 만든 농다리는 끝이 없어보였다.

‘강과 다리가 이다지도 작았단 말인가. 이 다리를 건너 꽃가마도 나가고 꽃상여도 나가곤 했지. 이제 여울을 건너면 너와 나는 저승으로 간다.’

가마는 기우뚱거리며 위태롭게 농다리를 건너고 있었다.

‘아이야, 이 어미는 너와 함께 그저 명아주나 강아지풀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살고 싶었어. 운명은 거스를 수 없나 보다. 너의 태몽 대로 죽음의 길을 가고 있구나.’

대왕과 혼례를 치른 밤, 열여섯의 나이에 첫 아이를 회임했다. 하령은 전쟁과 외교로 분주해 늘 궁궐 밖으로 돌았고, 어린 왕비는 왕을 대신해 홀로 감당해야 할 잦은 의례와 일로 뱃속의 아이를 돌보지 못했다. 예정보다 일찍 태어나 사산한 아이는 작은 금관에 넣어져 고향 뒷산에 묻혔다. 여옥은 아이를 따라 가겠다며 흙을 파헤치고 울부짖다 넋을 잃었다. 넋을 잃은 동안, 비몽사몽간에 가야산 산신 정견모주가 나타났다.

하얀 옷에 산발한 모습이 여옥이나 다름없었다.

정견모주가 나무궤짝을 주며 말했다.

“하령은 가야의 시조인 나 정견모주와 천신 이비가지를 무시하고 홀대했다. 오로지 제 힘으로만 왕업을 일으키려 하나 모래성을 쌓는 것과 같다. 첫 아이에게는 그나마 금 궤짝을 주었다. 머지않아 둘째 아이도 가질 것인데 둘째에게는 나무궤짝을 준다.”

우리말 어원연구 넋 【S】nihkshi(니크시), 【E】spirit of the dead person(죽은 자의 영), 【L】nex(죽음).

넋에 왜 ‘ㄱ’ ‘ㅅ’ 받침이 들어가 있는지 산스크리트어를 살펴보면 근원을 알 수 있어 흥미롭다. 흙도 마찬가지다. 흙: 【S】hrg(흐르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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