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채은 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위원 지역사연구가

도산(島山, 50m), 평지에 야트막하게 솟아있는 산이 섬처럼 생겼다 하여 불리어진 지명이다. 지금의 학성공원으로, 이곳에 쌓은 성을 도산성(島山城)이라 한다. 또한 일본군들이 쌓았다 하여 ‘울산왜성’이라고도 한다. 도산성은 정유재란 때인 1597년 12월22일에서 1598년 1월4일까지의 13일간에 걸쳐 조명연합군과 일본군과의 피비린내 나는 전투(1차)가 벌어졌던 현장이다. 그래서 이곳에서 있었던 전투를 ‘도산성전투’ 또는 ‘울산성전투’라고 한다.

1592년 4월 일본군의 침략으로 일어난 임진왜란 5년 뒤, 정유년(1597)에 재침략한 전쟁이 이른바 ‘정유재란’이다. 당시 국운이 풍전등화처럼 나락(奈落)으로 떨어지는 위기에 처할 즈음, 우리의 조상선열들은 목숨을 초개와 같이 버려가면서까지 구국의 선봉에서 싸우셨다. 훗날 전국적으로 그러한 선열들의 추모공간인 사당을 만들어 제향을 하고 있으며, 2000년부터는 울산 충의사에서도 매년 봄·가을 두 차례에 걸쳐 추모제향을 하고 있다.

이러한 전투의 현장이 바로 울산 시가지의 중심부에 있으며, 또 치열하게 전개되었던 그날이 머지않아 다가오고 있다. 불과 6개월 남짓 남았다. <한국천문연구원>에 의하면, 음력을 사용하던 당시 1597년 12월22일은 양력으로는 1598년 1월28일(수)이다.

이처럼 도산성전투의 전개된 날짜가 해마다 지나가고는 있지만, 올해는 특별히 7주갑(420주년)을 맞는 의미있는 해이다. 그간 울산시에서는 임진왜란과 관련하여 여러 가지 행사, 즉 도산성전투를 그린 전투병풍도의 특별전시를 비롯하여 울산 의병들의 활약상을 담은 뮤지컬 공연행사와 울산임란사재조명이란 간행물도 펴냈다. 또 충의사를 통하여 관내 초등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울산의 충의교육에도 한몫을 하고 있다.

또, 1598년 9월22일에 전개된 도산성전투(2차)는 순천왜성전투·사천왜성전투와 함께 임진·정유재란의 마지막 전투로 평가되고 있는 역사적 사건이다. 이러한 역사적 사건의 현장이 바로 우리 울산이었다는 점과 제1차 도산성전투의 전개 날짜를, 무려 420년이란 장구한 세월이 흐른 머지않은 날에 맞이한다는 그 자체에 의미를 부여하고자 한다.

올해는 울산시가 광역시로 승격된 지 20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시에서는 다양한 기념행사를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눈앞에 보이는 이벤트성 행사도 중요하지만 오랜 세월이 흐른 역사적 사건에 대한 의미도 되새겨볼 수 있는 작은 배려라도 있어야 되지 않겠는가? 하는 것이 필자의 관견(管見)이다.

작은 배려란 당시 치열한 전투를 벌였던 동아시아 3국(한·중·일)의 임란 관련전문가와 학자들이 참여하는 국제학술회의를 통하여 1·2차 도산성전투의 역사적 의미와 가치를 살펴볼 기회의 장(場)을 마련하자는 것이다. 그것은 제대로 정립되지 않고 있는 울산지역 임진왜란사, 특히도 임란 초기의 기박산성 의병결진과 마지막이라 할 수 있는 두 차례의 도산성전투의 역사적 의미와 가치를 재조명하기 위함이다.

이웃한 대구·경북지역에서는 대구광역시를 비롯하여 재정이 열악한 경북도내 8~9개 중·소 지자체에서도 자기 지역의 임란사를 재조명하는 작업이 이미 지난 2~3년 동안 이루어졌다. 늦었지만, 이제는 우리 울산에서도 얼마 남지 않은 도산성전투 7주갑(420주년)에 맞춰 이러한 국제학술대회 개최의 필요성과 당위성에 대해 관심을 가져봄직하다.

다가오는 도산성전투 7주갑(420주년)의 그날에는 전국 최대 규모의 임란의사 추모사당을 가진 울산광역시의 위상에 걸맞은 면모를 보여줬으면 하는 게 필자의 바람이다. 이는 관련 기관·단체의 관심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일이다. 관계자들의 관심을 간청(懇請)하면서 필자는 내심 이 글에 국제학술대회 개최에 대한 작은 소망을 담아본다. 박채은 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위원 지역사연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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