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김하기 그림 이상열

 

정견모주가 나무궤짝을 주자, 여옥이 놀라 그녀의 옷자락을 부여잡고 애원했다.

“정견모주님, 제가 정성을 다할 테니 둘째만은 살려주십시오. 제발 이 나무궤짝을 거두어 주십시오.”

정견모주는 여옥에게 관과 같은 나무궤짝을 남기곤 홀연히 사라졌다.

꿈에서 깨어나니 여옥의 이마에 땀이 흥건했다. 불길한 태몽이었다.

여옥은 하령대왕에게 꿈 이야기를 했다.

하령은 대수롭지 않게 껄껄 웃어넘기며 말했다.

“꿈은 반대니 길몽이오. 사실 난 꿈이나 미신 따위는 믿지 않소.”

“천군과 신녀도 말했어요. 정견모주와 이비가지는 우리 대가야의 시조신이신데 윗대에 비해 너무 소홀이 모신다고요.”

“천군과 신녀가 산신과 천신을 내세우는 것은 자신의 세력을 불리고 밥벌이하기 위해서요. 신화와 전설은 꾸며낸 허황된 이야기에 지나지 않소.”

▲ 그림 이상열

“신들의 노여움을 살 일은 하지 않는 게 좋아요. 더욱이 왕손의 안위가 걸려 있다면 지푸라기라도 잡아야지 않습니까.”

“아이는 또 낳으면 되는 것, 아이의 죽음 때문에 너무 상심 마시오.”

하령은 여옥에게 무뚝뚝하게 한 마디를 남기고 바람처럼 왜로 떠났다.

여옥은 하령대왕의 불과 같은 성격을 알고 있다. 남에게 지는 것을 죽기보다 싫어하고 뜻한 바를 위해서는 물불을 가리지 않고 덤벼들었다. 그는 평생 고구려를 불구대천의 원수로 생각했다. 할아버지 상금왕이 고구려와의 전쟁에서 패전해 참수당하고 부왕 금림은 고구려에 굴복해 왕비를 고구려에 빈으로 보냈다. 금림왕은 조공과 조알로 고구려 신라 백제 중국을 사대했으며 부드러운 외교술로 왜와 12국 가야연맹체를 이끌어 가야를 신라와 백제에 버금가는 부국으로 만들었다.

하령은 타협적인 성격의 부왕을 못마땅하게 생각했다. 부왕이 죽고 난 뒤 왕이 된 하령이 가장 먼저 한 일은 천군이 성역화 한 솟대와 소도를 불태워 없애고 제정일치를 주장하는 무리들을 부왕과 함께 순장시켜 버린 것이었다. 천군과 신녀들이 평소 부왕에게 ‘태자 하령은 성격이 난폭하고 조야하니 차라리 온화하고 호학하는 동생 차령에게 종통을 물려주셔야 합니다’고 진언한 까닭이다.

하령은 오로지 가야철기군의 힘과 무력을 믿었다. 철기군을 바탕으로 대국에 대한 조공과 조알을 폐지했고 12국 가야연맹체를 힘으로 눌러 대가야 아래 굴복시켰다. 외국을 대할 때도 사대교린 대신 원교근공책을 썼다.

여옥은 그런 하령이 듬직하다기보다는 늘 아슬아슬하게 느껴졌다.

‘바람이 불면 대나무는 휘어지지만 참나무는 부러지기 마련, 외지로 나가는 정복보다 내치에 힘쓰면 좋으련만.’

우리말 어원연구      아슬아슬. 【S】asri(아스리), 【E】feeling dangerous(위험하게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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