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김하기 그림 이상열

 

분만이 시작되어 몸을 틀기 시작한 여옥이 고상지에게 말했다.

“장군, 너무 하십니다. 출산의 금기마저 어기시려는 겁니까?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장군의 품에 안겨드릴 테니 여기서 나가주세요.”

고상지는 여옥의 말을 무시하고 움집안을 수색하며 병사들에게 말했다.

“이상이 없느냐?”

한 병사가 창 자루로 바닥을 치다가 말했다.

“여기 아래에 쿵쿵 소리가 납니다. 뭔가 비어 있는 듯합니다.”

“무시기? 바깥으로 연결된 비밀통로일 수 있다. 파보아라!”

병사가 괭이를 가져와 움집 바닥을 파기 시작했다. 그러자 나무덧널 같은 게 나왔다.

 

“이게 뭔가? 뚜껑을 열어라.”

병사들이 뚜껑을 여니 역한 냄새와 함께 널 안에 해골과 뼈만 남은 시신이 보였다.

여옥이 몸을 틀며 울부짖기 시작했다.

“아, 정말 너무들 하십니다. 아무리 죽을 아이지만 개, 돼지와 같은 짐승의 새끼도 이렇게는 태어나지 않습니다.”

고상지도 너무 심하게 했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병사들에게 다시 뚜껑을 닫고 흙을 덮어라고 지시했다.

“자, 그만 나가자. 나가서 움집을 에워싸서 지켜라. 개미 한 마리, 땅강아지 한 마리도 얼씬하게 해서는 안 된다, 알겠느냐.”

“예.”

고구려 병사들이 움집을 둘러싼 삼엄한 경비 속에 여옥은 몸을 틀며 진통을 했다. 여옥이 출산의 고통으로 신음소리를 지르자 유모가 여옥의 입에 베수건을 물려주었다. 여옥의 눈에는 하령과의 첫날 밤 합환주를 나누던 모습과 참수되어 바라보던 하령의 얼굴이 나타났다 사라지고, 회임해서 회임하례를 받았던 때와 사산한 첫 아이를 붙들고 깨우느라 흔들던 장면, 온갖 허상들이 나타났다 사라지고 떠오르다 잠겨갔다.

‘사랑하고 미워하는 일이 바람과 같고, 태어나고 죽는 일이 안개와 같은 것임을 진작 몰랐던 것일까. 이 아이가 죽으면 나도 베수건을 목에 걸고 자진하리라.’

고통과 진통으로 비몽사몽 간에 여옥은 잠시 혼절했다. 꿈에 흰옷을 입은 가야산신 정견모주가 보였다. 모주의 앞에는 전에 본 나무궤짝이 그대로 놓여 있었다.

여옥은 정견모주에게 항의했다.

“모주님도 너무하십니다. 제가 가야산 꼭대기에 있는 허물어진 정견모주 신당을 복원하고 모주님께 그렇게 치성을 드렸건만 죽은 우리 아이를 담아가시려고 다시 나무궤짝을 가져오신 것입니까?”

“천군과 신녀를 죽이고 신당을 허물은 하령을 생각하면 아이를 죽여 마땅하나, 내가 너의 갸륵한 정성을 생각해 마음을 바꾸었다. 나무궤짝을 열어보아라.”

우리말 어원연구 움집. 【S】uhm(움) + jive(지베) 【E】basement(지실, 땅집) + house(집).

‘이 지븨 자려하시니’(용비어천가 102장)에서 집의 옛말은 ‘지븨’로 나온다. 산스크리트어 ‘jive(지베)’와 가깝다. 움집의 ‘uh’는 【S】uhda(우흐다)에서 나왔는데 【E】shelter(살다, 주거지, 피난처)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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