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핵무기와 정부의 탈 원전 선언
한반도 운명을 좌우할 두개의 불씨
국민 모두가 주인의식 갖고 대처해야

▲ 이광복 국회 입법정책연구회 부회장

우리는 한반도 운명을 좌우할 두개의 불씨를 껴안고 있다. ‘북한 핵무기’와 ‘정부의 탈(脫)원전 선언’이다. 발사버튼을 누르면 금수강산이 죽음의 땅이 되거나 종료버튼에 손을 대면 경제발전의 시계가 거꾸로 돌 수도 있는 문제다. 그러나 미국의 전폭기가 한반도 상공에서 폭격 연습을 하고, 정부의 ‘신고리 원전 5·6호기 건설중단 조치’에 전문가들이 난리를 쳐도 대다수 국민은 무관심한 듯 보인다.

정치리더십이라도 제대로 작동한다면 걱정의 절반은 덜어버리련만 솔직히 미덥잖다. ‘서민들이 이해 못하는 복잡한 세계’라서 그분들의 ‘큰 뜻’을 곡해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핵무기 앞에 이상론을 내세우고, 발전(發電) 100년 대계(大計)를 민간 배심원단에게 맡기려는 정치를 얼마나 믿어야 할까.

이런 위험한 상황을 입신(立身)이나 득세의 기회로 삼으려는 사람들도 보인다. 국가 생존전략을 짜는데 숟가락 올리겠다는 자칭 ‘전문가’와 ‘멘토’가 한 둘이 아니다. 시위에 노련한 시민단체들은 어김없이 천막치고 머리띠 두르고 정의를 부르짖는다. 그들이 외치는 정의는 ‘시급 1만원’이 됐다가 갑자기 ‘사드(THAAD)’가 됐다가 그런다. 그만큼 그들이 사회정의에 목마르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싶다.

유언비어 강국 처지에 입소문이 빠지면 섭섭할 터. 북핵 때문에 등장한 사드는 졸지에 ‘미제 야욕’의 증거가 돼 버렸고, 대한민국의 번영을 주도한 핵발전은 전근대적 흉물의 상징이 될 판이다. 유언비어는 혈기 넘치는 전문 시위단체의 에너지다. 그들은 흥분한 시민들을 앞세워 사드가 있는 군시설의 출입을 통제하는 무법지대도 만들었다. 그들의 아우라가 얼마나 강렬하기에 법 지키라고 국민이 완장 채워준 경찰도 꼼짝 못한단다. 결국 유류공급이 끊긴 비련의 방어무기는 지금 사실상 고철신세다. 원전도 억울하긴 마찬가지다. 우리 발전의 30%를 차지하는 원전은 고도의 전문성 때문에 우군(友軍) 찾기가 무척 어렵다. 전문가들이 ‘말도 안 된다’는 원전사고를 다룬 영화를 보고 유력한 정치인이 울어버렸다니 일반인들이 갖는 두려움은 오죽하겠는가.

위험천만한 불씨는 어느 시대, 어느 곳에나 있는 법이다. 350년 전 영국의 ‘작은 불씨’는 런던을 잿더미로 만들어 버렸다. 1666년 9월2일 새벽 런던의 한 빵집에서 시작돼 나흘 간 도심의 80%를 없애버린 대화재는 ‘주인의식 실종’ ‘리더십 부재’ ‘위기 장사꾼 등장’ ‘유언비어에 마비된 집단이성’이 연출·주연·조연이 돼 상연된 일대 비극이었다.

화재 초기, 상인들이 조합 형태로 운용했던 민간 소방서는 불난 곳이 조합 소속이 아니라며 불 끄는 것을 외면했다. 불길이 크게 번지자 건물을 부셔 방화선을 만들자는 의견이 나왔다. 하지만 시장은 집주인들의 허락이 없다며 거부했다. 동틀 무렵엔 시민들도 불 끄는 것을 포기하고 런던을 탈출하기 시작했다. 돈 받고 짐 옮겨주는 장사치와 빈집털이 도둑들은 신이 났다. 급기야 국왕(찰스 2세)이 나섰다. 직접 인부를 고용하고 건물을 부수도록 명했다. 나흘 후 불이 꺼지자 거리로 쏟아져 나온 런던시민들은 외국인들을 공격했다. “프랑스인과 네덜란드인이 불을 질렀다”는 유언비어에 이성을 잃은 것이다. 국왕은 시민들의 분노가 왕실로 향할까봐 무법천지를 방치했고, 결국 화재 발생 이틀 뒤에 런던에 들어온 한 프랑스인이 범인으로 지목돼 사형을 당하는 ‘집단 광기’의 끝을 보고야 말았다.

350년 전 런던의 시민정신·정치리더십과 지금 우리의 그것은 다를 것이다. 다만 때를 놓칠까 걱정된다. 우리 국민의 열화 같은 관심과 주인의식을 하루빨리 보고 싶다.

이광복 국회 입법정책연구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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