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라영 화가·미술학 박사

생각하지 못했던 창의적인 재료 그 자체가 표현의 대상이 되는 경우도 있지만, 대개 예술가에게 있어 재료는 자신이 표현하고자 하는 대상을 가장 효과적으로 드러낼 수 있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껌이나 초콜릿의 포장지, 종이가방, 종이봉투, 선물 포장지 등 심성아 작가가 모은 종이의 대부분은 ‘집들이 있는 풍경’이 되었다. 이 포장지들이 내용물을 감싸서 그것을 보호하는 역할을 하는 것과 같이 집은 외부로부터 인간의 몸을 보호하는 기능도 있다. 여러 종류의 종이는 작가의 풍경작업에서 이유가 있는 재료인 셈이다.

관객들은 여러 종류의 종이로 만들어진 풍경을 관람하지만, 작가는 그 풍경을 통해 종이 조각에 담긴 기억을 본다. 친구가 준 생일 선물의 포장지, 동생이 사다준 빵이 담겨 있던 종이봉투, 아르바이트하러 간 곳의 사장이 실내화를 담아왔다가 버린 종이가방 등 작가는 작품안의 모든 조각들을 다 기억해 낼 수 있다.

 

작품 ‘세상의 풍경과 초상’(used paper on panel, 5m이내 가변설치, 2016·사진)은 현재 작가가 입주해 있는 부산시 영도구의 흰여울 마을의 풍경을 담은 것이다. 기억의 작은 조각들은 큰 패널 작품 주위에 엽서만한 종이들 위로 파편처럼 흩어져있고, 그 파편들이 모여 가운데에는 마을전체의 풍경을 이루었다.

비슷비슷해 보이지만 어느 것 하나 같은 것이 없다. 작가는 이 조각들이 하나의 독립된 개체로서도 가치가 있음을 보여주고자 했다. 원래의 종이 모양이 아니라 필요에 의해서 만들어진 모양이기 때문이다. 작가는 아름다운 풍경을 제작하기 위해 종이 하나하나의 모양에 공을 들였다. 비록 종이의 용도는 변질되었지만 더 이상 쓰이지 않는 것들이 아름다운 기억으로 재창조될 수 있다는 것은 매우 흥미로운 일이다. 심성아의 풍경작업은 오는 30일까지 울주문화예술회관에서 만나볼 수 있다. 기라영 화가·미술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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