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옥순 옥현중학교 교사

“선생님, 오늘 감사합니다. 제가 토론 시간에 일어나서 아무 말도 못하고 한참을 서 있었는데도 기다려 주시고, 우리 모두 다 초보들이니 열심히 알아가면서 공부해보자고 하셨잖아요? 많이 두렵고 창피했는데 선생님이 그렇게 말씀해 주셔서 위로가 되었어요. 앞으로 열심히 해 볼게요.”

인문책쓰기 동아리 겸 독서토론 동아리에 소속돼 있는 2학년 남학생이 밤늦게 SNS메시지에 보내 온 내용이었다. 그 아이의 메시지는 마음에 파문을 일으켰다. 그리고 생각했다. ‘이 아이를 도와주어야겠다. 이 아이가 여러 사람 앞에서 당당히 자기 목소리를 내게 해서 움츠려 있는 마음을 펼 수 있게 도와주어야겠다’고.

12명의 인문책쓰기 동아리 아이들과 독서토론 준비를 했다. 울산에 있는 중학교에서 처음이지만 다행인 것은 청량초등학교의 독서토론회를 참관한 것이다. 준비시간은 짧았지만 열심히 했다. 고민끝에 큰 울림을 안겨준 아이를 사회자로 세우기로 했다. 열심히 해 보자고 약속하고 휴일에도 학교에 나오도록 했다.

큰 소리로 대본이 익숙해질 수 있도록 말하기를 반복했다. 학생은 지도에 열심히 따라와 주었다. 돌발 상황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지만 학생이 가진 힘을 믿기로 했다. 전체 진행은 내가 하면서 사회자가 제어하기 어려운 상황이 생기면 자연스레 개입하리라 생각했다.

우리는 이 독서토론을 누군가에게 무엇을 보여주어야 하는 부담의 자리가 아닌 이 시간을 통해 우리가 한 뼘 크게 성장하는 기회로 만들기로 했다. 독서토론을 준비하는 중에 우리는 논제 발췌 과정을 동영상으로 촬영하면서 즐거워했고, 시 낭송을 잘하는 학생으로 하여금 배경음악을 깔아 시를 낭송하는 것으로 아이디어를 모으며 흐뭇해했다.

선택한 책은 올해의 책으로 선정된 이장근 시인의 <파울볼은 없다>였고, 이 시집에 수록된 시를 읽으면서 우리 삶을 돌아보는 여러 질문들을 던지면서 독서 논제를 발췌했다. 그렇게 해서 결정한 논제는 ‘현재 우리나라에서 학습을 위한 학원 공부는 필수이다’였다. 학생들의 삶에 가장 가까운 문제를 건드려 보기로 했다.

토론 준비과정에서 아이들의 대화 속에는 학원을 왜 다니고 있는지, 장점과 단점은 무엇인지, 부모와의 갈등, 교육의 문제점 등이 자연스럽게 흘러나왔다.

우리는 토론자와 배심원을 나누는 등의 역할은 정했지만 시나리오는 짜지 않기로 했다. 찬반 팀원끼리 토의는 하되 사회자 외에는 대본을 준비하지 않았다. 그래서 떨리고 긴장도 됐지만 상대방의 말에 집중하고 반박을 위한 메모를 부지런히 해야만 했다. 배심원은 각자 토론을 본 소감을 발표하기로 했다. 그래서 토론하는 내내 메모를 하면서 집중해야 했다.

토론 당일, 예상보다 많은 사람들이 왔고 사회자도 토론자도, 배심원도 모두 잘 해 냈다.

토론회 다음 날 아이들은 자체 평가회를 가졌는데 각자의 소감을 말하는 자리에서 자신들이 토론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많이 성장했음을 서로 증명했다. 독서토론회 후 나는 아이들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서생중과 상북중 두 곳의 중학교 독서토론을 함께 참관했다.

강남교육지원청의 ‘꿈을 찾아 떠나는 행복한 독서여행’ 사업으로 진행하고 있는 독서토론회. 준비하는 선생님들은 대부분이 만만치 않은 수고를 요구하는 일이지만 독서토론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학생들은 한 뼘 크게 성장한다는 것을 두 해에 걸쳐 체험했다.

우리의 교육이 한 걸음 더 나아가고 거기에 발 맞추어 우리 삶이 더 성숙해지고 윤택해지는 밑바탕에 독서토론이 있을 것이다. 이런 ‘거룩한(?)’ 부담이 있기에 우리는 학생들과 함께 이 일을 하는 것이고, 이 사업이 우리 교육에, 또 우리 삶에 자연스레 녹아들기를 바라는 바이다.

구옥순 옥현중학교 교사

 

저작권자 © 경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