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승왕 반천초등학교 교사

“빨리, 빨리 주세요.” “그래요? 그럼 빨리 빨리 드셔야 합니다.”

‘걸리는 시간이 짧게’라는 뜻을 가진 부사 ‘빨리’는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대단히 익숙한 낱말이다. 이 말은 우리나라를 방문했던 많은 외국인들이 인상적으로 기억하고 있다는 점에서 빠르고 정확한 것을 좋아하는 우리나라의 문화를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다.

비극적인 전쟁 이후 많은 어려움을 겪었던 우리나라가 전 세계에 유래가 없는 경제 성장을 단기간에 이룬 것도 어쩌면 무엇이든 빨리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부지런함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현재 우리나라는 인터넷이 가장 빠른 나라일 뿐만 아니라 사회, 경제, 문화 전반에서 무엇이든 빠르게 하는 나라로 인식되고 있다. 그래서인지 식사도 빠르게 하고, 책도 빠르게 읽고, 공부도 빠르게 하려는 것이 몸에 익숙해져 있다.

“선생님, 다 읽었어요.” “벌써?” “네, 다른 것도 읽을게요.”

아침 독서 활동 시간이나 국어과 읽기 자료를 읽는 시간에 아이들과 가끔 주고받는 말이다. 다독(多讀)이 책을 읽는 전통적인 방식 중 하나라고는 하지만 ‘아이들이 너무나 빨리 읽는 것이 아닌가?’하는 의문이 들 때가 있다. 이럴 때면 좀 더 천천히 여유를 가지고 책을 읽었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아이들이 스마트폰으로 친구들과 빠르게 소식을 주고받는다거나 궁금한 것을 빠르게 찾게 되면서부터 어느새 사색에 잠긴다거나 설렘을 가지고 무엇인가 오랫동안 기다려보는 시간적 여유를 누려보지 못하는 것 같다.

최근에는 이처럼 빠른 것과 반대되는 모습으로 살아가려는 움직임도 활발해지고 있다. 예를 들어 패스트 푸드(Fast Food)와 반대되는 개념으로서 빨리 만들어진 음식의 여러 문제점을 해결하는 동시에 전통적 식생활 문화를 찾자는 취지로 시작된 슬로 푸드(Slow Food) 운동과 크지 않은 도시에서 자연과 문화적 전통을 찾고 보호하며 여유와 느림을 통해서 삶의 가치를 찾아가는 슬로 시티(Slow City)에 동참하는 움직임도 활발해지고 있다.

독서 활동에서도 이와 같이 여유를 갖고 책을 읽고자 하는 활동이 늘어나고 있는데, 이것을 슬로 리딩(Slow Reading)이라고 한다. 이 것은 책을 천천히 그리고 여유 있게 읽으면서도 실제로는 여러 권을 읽은 것만큼이나 큰 효과를 가져 온다고 생각하는 것에서 시작되었으며, 전통적인 방식으로서의 정독(精讀) 또는 숙독(熟讀)과 대단히 유사하다.

바쁘게 살아가는 현대 사회에서 빠르게 필요한 부분만 찾아서 읽는 것도 좋고, 짧은 시간에 많은 것을 읽는 것도 좋지만 조금 더 천천히 그리고 여유를 가지며 읽어보는 것은 어떨까? 책 한권을 정해서 가족이 함께 천천히 읽고 사색한 후 대화를 해보는 것, 그것에서 삶의 여유가 시작될 수 있을 것이다.

이승왕 반천초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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