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에 대한 예의·존중·연민 등
‘돈보다 사람’을 우선으로 할때
사회 만연한 갑질문화 사라질것

▲ 박순환 한국산업인력공단 기획운영이사

얼마 전 영국의 인디펜던트지에는 갑질(gapjil)이라는 단어와 함께 개저씨(gaejeossi)라는 단어가 소개됐다. 대한민국의 민낯이 그대로 노출되는 국제적 가십거리가 되어 버린 셈이다.

영어 사전에는 한국어 발음 그대로 등재된 단어들이 있다. Hangul(한글), Kimchi(김치), Taekwondo(태권도)처럼 자랑스러운 것도 있지만 Kisaeng(기생)이나 Chaebol(재벌)처럼 불명예스러운 용어도 있다.

최근 ‘갑질’ 논란을 일으켰던 미스터피자 회장이 대국민 사과를 하고 회장직에서 물러났고 구속됐다. 한국에서 권력과 돈을 가진 자들의 강압적이고 횡포한 또는 불필요하게 힘을 행사하는 행위인 ‘갑질’이 잇따르면서 ‘Gapjil’이라는 단어도 곧 영어 사전에 등재될 것이 아니냐는 우려를 낳고 있다.

‘갑질’이 사라지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한국인은 유난히 권력과 지위에 대한 갑을 관계에 집착했다. 그리고 근대사 이후 과거 ‘갑질’에 대한 추억은 국민정서 밑바닥에서 아직도 사라지지 않고 있다. 일제 강점기에는 일본인에게, 해방이후에는 군사정권에, 지금도 기득권에 ‘갑질’을 당하고 있고 돈과 권력에 ‘갑질’을 당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 부모들은 ‘갑질’을 자식들이 당하지 말라고 그토록 공부하고 출세하라는 말을 밥 먹듯이 한 것이 아닐까? 당신들이 직접 피부로 겪은 ‘갑질’의 고통과 민망함을 되물림하지 않기 위해서다. 계층화가 심한 불평등 사회일수록 하위계층에 대한 편견은 증가하고 그들에게 우월감을 표시함으로써 자신의 사회적 지위를 유지하는 경향이 짙어진다.

‘종로에서 뺨맞고 한강에서 눈 흘긴다’는 말처럼 결국 사회 전반에 만연한 암세포처럼 자라고 있는 불평등, 불공정, 부정부패 ‘3불’이 ‘갑질’ 문화를 부추기는 주범임을 부인할 수 없다.

우리는 강자에게 굴종하면서 받는 스트레스를 자기보다 못한 사람을 짓밟으면서 푸는 사회에 살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갑질’ 기사만 보면 ‘갑’에게만 분노를 쏟아낸다. 자신이 했던 ‘갑질’을 되돌아보고 성찰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은 ‘갑질’과 무관하다고 생각한다.

가끔 나이 많은 사람들의 애기를 들어보면 아주 흔하게 발견되는 공통점이 하나 있다. “옛날이 좋았어….” 이 말은 돈이 많고 삶이 안락해서가 아니라 비록 돈도 없고 살기도 더 힘들었지만 변화의 가능성이 존재했기 때문에, 희망을 가질 수 있었기 때문에 추억처럼 내뱉는 말이다.

하지만 지금 우리 사회는 확실히 수십 년 전에 비해 그 가능성의 폭이 좁아졌다. 가능성과 기회의 축소는 필연적으로 사람들을 절망에 빠트린다. 그래서 현재 우리의 사회를 살고 있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불행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모두가 날카로워 진 것이다. 갑을 관계에서 발생하는 권력의 비대칭은 점점 심화되고 감정적 충돌까지 발생한다. 그런 상황에서 자신이 ‘갑질’을 심하게 할수록 자신에게 당한 을 역시 어디선가 분풀이를 해야 할 것이다.

그렇게 보면 보편적인 ‘갑질’이 사회에 만연하게 될수록 자신이 을이 되었을 경우 당하는 고통의 양도 늘어나게 된다. 이 멍청한 불행의 재생산 고리 속에서 벗어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갑질’의 논리를 무너트리는 첫 걸음이자 유일한 방법, 그리고 우리가 이미 다 알고 있는 방법은 ‘사람’이다.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잊어버리고 있고, 의도적으로 회피하고 있다. 돈보다 사람이 먼저라는 아주 단순한 사실, 갑을 관계 이전에 사람에 대한 예의, 사람에 대한 존중, 사람에 대한 연민, 사람이 가장 소중한 존재라는 것을 말이다. 변하지 않는 진리, 그리고 변하지 않아야 할 진리는 ‘사람이 먼저’다. 여전히.

박순환 한국산업인력공단 기획운영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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