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 저물어 석호촌에 투숙하였네
한 밤중에 관리가 사람을 잡으러 오니,
영감은 담장너머 달아나고
할멈이 나가서 문을 지키네
관리의 호령은 어찌 그리 사납고
할멈의 울음소리는 어찌 그리 애달픈지,
할멈이 나서서 하는 말을 들어보니
“세 아들이 모두 업성에 수자리 나갔는데,
한 아들이 부쳐온 편지에
두 아들은 최근 싸움에서 죽었다니,
남은 자는 그래도 구차하게 살겠지요
죽은 아들은 아주 끝난 것이지요
집에는 다른 사람이라곤 없고
오직 젖먹이 손자 녀석 뿐,

-하략-

▲ 엄계옥 시인

시마와 궁핍에 살을 내어주고 뼈로 살던 두보는 죽어 시성이 되었다. 흔히 두보시를 서사시라고 한다. 서구말로 리얼리즘 시다. 시로 쓴 역사는 역사책과는 감동이 다르다. 이 시는 안녹산(安祿山)의 난을 배경으로 한다. 마치 당시절로 가 있는 착각마저 든다. 시인은 석호라는 산골에서 하룻밤 묵는다. 한 밤중에 관리가 나왔다. 남자들을 관군으로 데려가기 위해서다. 영감은 숨어버렸고 집에는 며느리와 갓난 손자뿐. 아들 셋은 전쟁에 끌려가서 둘은 죽었고. 며느리는 젖먹이가 딸렸지만 옷이 없어서 나설 수가 없으니 할멈 자신을 데려가라고. 이튿날 할아버지와 작별하는 장면이다. 문학의 위대함은 이런 것이다. 이긴 자의 기록이 아닌, 부조리에 대한 진실. 구석진 곳이라서 조명 받지 못한 사람들의 이야기, 역사책 보다 시가 재밌는 이유다.

 

저작권자 © 경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