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정민 울산문화재단 기획경영팀 대리

나는 대학에서 클래식 작곡을 전공했다. 음악을 만들어가는 과정은 재미있었고 적성에 맞았으며 남은 평생을 음악가로 살아갈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렇게 대학을 졸업했고 넉넉지 않은 형편에도 클래식 전공생들이 살아남기 위해 으레 선택하듯 유학을 떠났다.

하지만 자신에 대한 부족함과 여러 부담감을 이겨내기 힘들었고, 1년 만에 한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다시는, 아니 당분간은 음악을 결코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아마도 유학에 실패했다는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리라.

긴 비행시간을 마치고 비행기는 인천공항에 착륙했다. 그 순간이었다. 불현듯 두 눈에 눈물이 고였다. 다시는 음악을 하지 못할 거라는 좌절감 때문이었을까? 물론 그러한 점이 전혀 없다고 할 순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 순간의 심정은 음악밖에 모르던 20대 후반의 청년이 대한민국에서 ‘보통사람’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두려움’을 넘어선 ‘공포감’이었다.

그랬다. 나는 ‘실패한 예술가’였던 것이다. 실패한 예술가는 ‘예술’ 그 자체의 실패가 아닌 예술가로서의 삶을 포기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점에서 나는 명백히 실패한 예술가였다.

그 이후의 삶은 결코 녹록지 않았다. ‘보통사람’으로 살기 위해 수년 간 불안정한 신분으로 전국을 떠돌았고, 다행히도 그간의 누적된 경험이 바탕이 되어 울산에 정착할 수 있었다.

이 이야기는 비단 나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매년 수만 명의 실패한 예술가들이 세상에 배출되고 있다. 그 중 상당수는 자의반 타의반 예술과는 전혀 다른 분야에 종사하게 된다.

그렇지만 그 적응 과정은 결코 녹록치 않다. 예술전공생들이 예술가로서의 삶을 포기하는 것이란 인문계열 전공생들이 전공을 벗어난 분야에 취업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처절한 전향’이다. 우리나라의 예술대학은 실패한 예술가가 되었을 때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살아남는 방법은 알려주지 않는다. 이는 예술교육의 특수성도 있을 것이고, 교수들조차 실패한 예술가였던 적이 없었기에 그 방법을 전수할 밑천 또한 없었을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제도권은 이들에 대해 철저히 외면했고, 예술대학 졸업생들은 취업률 통계에서조차 제외되다 보니 실패한 예술가들이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지는 그 행방조차 묘연하다.

이렇듯 우리 시대의 예술가들은 궁지에 몰려있다. 예술가로서의 삶을 살든 실패한 예술가로서의 삶을 살든 그 길은 위태롭기만 하다. 다행히도 예술가들의 복지에 대해서는 꾸준히 관심이 높아져가고 있으나 실패한 예술가에 대한 대책과 관심은 부족하기 그지없다. 어쩌면 관심이 필요한 세상의 수많은 현안에 비해 그다지 중요치 않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알아야 한다. 세상의 많은 이들이 정량화되고 표준화된 가치를 좇을 때 그들은 구도자의 마음으로 묵묵히 외길을 걸어왔다. 그리고 그들이 만들어놓은 수많은 길은 우리의 상상력을 일깨우고 새로운 가치를 창출해내는 근원이 돼 왔다. 예술가들의 삶과 행위는 인류에 대한 숭고한 희생인 것이다. 그래서 그들의 실패는 결코 초라하지 않다. 서정민 울산문화재단 기획경영팀 대리

 

저작권자 © 경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