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김하기 그림 이상열

 

군신지 후누 장군과 수경 부인은 아이를 안고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기쁨의 눈물인지 슬픔의 눈물인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수경은 후누와는 달리 400년 가야왕의 종통을 보존했다는 기쁨보다 자신의 아이를 잃은 슬픔이 훨씬 더 컸다. 더욱이 수경의 마음은 아이를 볼 때마다 비명에 간 자기 아이가 생각나서 마음이 찢어질 듯이 아팠다.

하령대왕과 여옥왕비의 왕기를 받고 난 아이는 늠름하고 잘 생겼다.

수경이 젖을 물릴 때마다 ‘내 아이를 희생할 만큼 이 아이는 귀한 아이야. 나는 기쁘게 그 일을 했어’라고 뼈아프게 확인을 하고 다짐을 했지만 쉽게 마음이 열리지 않았다.

후누가 수경에게 말했다.

“우리가 낳은 걸로 하고 이 아이를 키웁시다.”

“안 돼요. 이 아이를 보면 죽은 우리 아이가 떠올라 견딜 수가 없어요. 다른 곳에 맡기고 유산으로 해요.”

“여보, 이 번 일은 정말 미안하오.”

“이 아이는 고귀한 왕자잖아요. 비천한 우리 애와 비교할 수 있나요.”

수경의 성격이 원래부터 톡 쏘는 들장미 향기지. 서리 맞고 피는 국화향이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은 향기가 아니라 가시를 드러내고 있었다.

▲ 그림 이상열

“사 백년 무거운 사직과 하령대왕의 마지막 눈빛이 나를 눌러 버렸소.”

하령대왕은 참수되기 전 아주 잠시 군신지 후누 장군을 쳐다보았다. 강렬한 눈빛이 화살처럼 날아와 후누의 가슴에 꽂혔다. 부처는 죽을 때 미소 하나로 팔만사천 가지의 법문을 전했다던가. 후누는 하령대왕의 눈빛에서 단 한 가지, ‘네가 종묘사직을 지켜라’는 유언을 읽었다. 후누는 군신의 의는 태산처럼 무거우므로 부모의 정은 가벼이 해야 한다며 간신히 아내를 설득시켜 이번 거사를 감행했다.

후누가 창밖의 감나무를 보며 수경에게 말했다.

“아이의 이름을 지어야겠소.”

늦가을에 감나무에 감은 다 떨어지고 까치집 위에 까치감 하나가 달려 있었다.

“희한하게도 까치들이 저 감 하나만은 쪼아 먹지 않고 남겨두었소. 감이 저리 큰 데도 떨어지지도 않는 것도 신기하고. 저대로 곶감이 되어 겨울을 날 것 같소.”

후누는 큰 까치감을 조용히 바라보더니 말했다.

“아이의 이름을 꺽감이라 합시다.”

“꺽감이오?”

“큰 감이라는 뜻이오. 꺽쇠, 꺽지는 큰 쇠, 큰 물고기를 뜻하지요.”

‘어리석은 사람.’

수경은 무심히 하늘 너머 감나무를 바라보았다. 앞으로는 전에처럼 후누를 사랑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이제부터 내 사랑은 줄이 끊어진 쟁처럼 소리가 없으리라.

둘은 아이를 한 달간 숨겨 키우다 아무도 알지 못하는 국경 너머 수경의 친정인 달천 쇠부리 마을로 보내기로 했다.

우리말 어원연구 크다. 크흐다(고어사전). 【S】khsida(크흐시다). the size is so gre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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