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관광해설사의 비망록-울산여지승람] (41)동해남부선 태화강역
(전)울산시문화관광해설사회 회장

▲ 한국철도시설공단은 동해남부선 복선전철화 사업의 일환으로 태화강역을 헐고 새로운 역사를 신축한다고 밝혀 수수하고 소박한 지금의 모습은 사라질것으로 예상된다.

울산 현대사 격동기 함께해온 역
1921년 성남리서 첫 출발 이전 거듭
1992년 남구 삼산동 현 위치에 둥지

KTX에 밀려난 ‘느린철도’
90년 사용하던 울산역 이름 내어주고
2010년부터 태화강역으로 역명 교체

동해선 개통시 재부흥 기대
동해남부선 복선전철화 사업 완료땐
향후 준고속열차·KTX운행도 계획중
이용객 3~4배 늘 듯…역사 신축 예정

오전 10시22분.

기차가 들어온다. 상행선 플랫폼으로 느릿느릿 정동진행 기차가 들어오고 있다. 가방을 둘러맨 청년이, 대여섯 살 되어 보이는 아이의 손을 잡은 엄마가, 어딘가 거동이 불편해 보이는 나이든 노인네도, 딸인지 며느리인지 그 누군가의 부축을 받으며 플랫폼으로 올라선다. 기차가 멈춰 섰다. 내리는 사람이 있다. 그리고 타는 사람이 있다. 여기는 동해선 태화강역(太和江驛)이다.

울산광역시 남구 삼산동에 위치한 철도역인 태화강역. 어디선가 짜면서도 향기롭고, 향기로우면서도 짠 소금 냄새가 날 것만 같다. 울산은 예부터 달천의 쇠와 함께 1000년이 넘는 세월을 소금과 함께 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62년 울산공업단지가 들어서면서부터 이 소금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하지만 울산지방에 전해오는 옛말에는 ‘추풍남 이남 사람치고 울산소금 안 먹은 사람 없다’란 말이 있었다고 한다. 그런 말이 생겨날 정도였던 울산 소금, 그 울산 소금밭 가운데는 ‘삼산염전’이 있었고, 그 염전 한 가운데 지금 이렇게 기차역이 들어서 있기 때문일까.

▲ 태화강역 항공사진.

장생포선, 울산항선의 기점역이기도 한 태화강역은 지금은 여객으로는 무궁화호가 정차하는 역이며, 화물로는 비료와 자동차, 컨테이너 등의 품목을 취급하는 역이다. 또한 태화강역은 대한민국에서 유일하게 자동차를 화물로 발송하는 역이다. 현대자동차 울산공장에서 출고된 차량 일부가 이 역에서 화물로 실려 이동된다고 한다.

울산이 시(市)로의 승격 이전인, 1921년 10월 25일 울산군 성남리 소재에 울산역(蔚山驛)이라는 역명(驛名)으로 역사(驛舍)가 들어선다. 그 후 1935년 12월 1일 ‘표준궤간철도’개통과 함께 현재의 ‘이마트 학성점’이 있는 장소인 구, 울산군 학성리로 울산역은 이전하게 된다. 그리고 50여년이 넘는 세월동안 울산역은 그 자리를 지키다가 1987년에 울산 도심철도 이설계획이 발표되면서 1992년 8월 20일 남구 삼산동의 현 위치로 다시 한 번 이전을 거듭하게 되는 운명을 맞이한다. 하지만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고속철도(KTX) 2단계 구간 개통으로 경주-울산 간 고속철도역이 ‘울산역’으로 지정됨에 따라, 2010년 11월 1일자로 90년 가까이 사용하던 동해남부선 울산역의 이름마저 ‘KTX’에 내어주면서 ‘태화강역’으로 그 이름을 달리하게 된 것이다.

태화강역이라 적힌 플랫폼 팻말 앞에서 건너편 역사(驛舍)를 바라보았다. KTX울산역사가 한참이나 도회적이고 세련되었다면, 태화강역사는 거기에 비해 수수하고 소박하기까지 하다. 또한 KTX울산역이 빠름의 효용성을 갖추고 있다면, 태화강역은 느림의 넉넉한 여유로움이 느껴진다.

‘열차’는 한자(漢字)로 ‘列車’다. ‘열(列)’ 은 줄을 서다는 뜻이고 ‘차(車)’는 말 그대로 차라는 뜻이다. 곧 줄을 지어 가는 차가 열차다. 기차라는 말은 ‘증기기관차’란 어원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기차는 한자로 ‘汽車’로 표기하는데, 여기서 기(汽)자는 ‘수증기’를 뜻하는 ‘기’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열차와 기차가 주는 어감이 어떻게 다른지, 부질없는 상념에 빠져들 무렵, 문득 영국 BBC가 선정한 아름다운 기차역 10곳이 떠올랐다. 러시아 모스크바 카진역을 시작으로 미국 뉴욕 그랜드 센트럴역, 핀란드 헬싱키 중앙역, 파키스탄 라호르역, 독일 베를린 중앙역, 인도 뭄바이 차트리바띠 사와지역, 이탈리아 피렌체 산타 마리아 노벨라역, 영국 런던 세인트 팽크러스역, 프랑스 파리 리옹역, 그리고 마지막으로 영국 노스요크셔 카운티 요크역이 있다. 아쉽지만 태화강역은 여기에 들지 못했다. 하지만 울산 현대사의 격동기와 함께 그 발전 과정을 묵묵히 지켜보며, 그 유장한 시간의 흐름을 오늘도 말없는 침묵으로 일관한 채 오직 그동안 이 역을 오고 간 수많은 사람들의 숱한 사연들과 옛 추억들을 오롯이 간직하고 있는 태화강역은 아름다움, 그 이상의 아름다움을 지닌 역임에 틀림이 없다.

2019년에 일광역과 태화강역 간 동해선이 개통되면, 태화강역은 부산 부전역에서 출발하는 광역철도의 종착역이 된다고 한다. 서울 가는 열차가 현재는 청량리역행 무궁화호 왕복 2회에 머물고 있지만 향후 중앙선 고속화가 완료되면 태화강역에 청량리행 준고속열차가 정차할 예정이라고 한다. 또 한편으로 동해선 복선전철화 사업이 완료될 경우 신경주역에서 경부 고속선에 합류해 서울까지 가는 KTX 운행도 계획 중이라고 한다. 그렇게 되면 지금의 태화강역은 동해남부선 복선전철화 사업 완료와 함께 여객은 물론이요 물류유통에 있어 명실 공히 ‘중앙역’으로서의 역할을 하게 된다고 하니, 자못 기대가 크다.

한편 울산시티버스는 순환형과 테마형의 두 코스가 있다. 그 가운데 순환형 코스는 다시 대왕암코스와 태화강코스로 나누어진다. 대왕암코스를 타면 울산의 상징인 고래와 바다를 한 번에 만나볼 수 있다. 또한 태화강코스를 타면 울산박물관, 울산대공원, 태화강대공원, 중구 문화의 거리, 울산문화예술회관 등을 둘러볼 수 있다. 그런데 이 모든 코스의 출발점이 바로 이곳 태화강역이다. 무엇보다 동해남부선 복선전철화 사업이 완료되면 하루 평균 태화강역 이용객이 지금의 5000명에서 1만5000~2만여 명으로 3~4배 크게 늘어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럴 경우 현재 규모로는 늘어나는 승객들을 감당하기에 턱없이 부족하고 역사도 비좁아 제 기능을 하기 어렵다는 전망이 나왔다. 또 주변 지반이 침하 현상으로 인해 역사 곳곳에 균열이 생겨나 안전문제가 제기되어 왔던 것도 사실이다. 그런 가운데 한국철도시설공단은 동해남부선 복선전철화 사업의 일환으로 현재의 태화강역을 헐고 새로운 역사를 신축한다고 밝혔다. 지금 태화강역이 또 한 번 시대적 변신을 꾀하고 있어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 홍중표 자유기고가

플랫폼 나무의자에 앉아서 몇 가지 즐거운 상상을 해본다. ‘기찻길 옆 오막살이’의 작사가이자 아동문학가인 윤석중이 ‘봄편지’의 동요작가 울산의 서덕출을 만나기 위해 그 시절 기차를 타고 오면서, 어쩌면 그 기차 안에서 이 곡을 작사한 건 아닐까하고 잠시 동화적 상상에 잠긴 그때, 삼등 삼등 완행열차 기차를 타고 동해 바다로 고래를 잡으러 가자며 70년대의 낭만을 얘기했던 송창식의 노래도 어쩌면 이 기차를 타고 가다 떠오른 순간적인 착상(着想)이 음표로 바뀌었던 아닐까하는 낭만적 상상에 빠져 있던 그때, 제복을 차려입은 역무원의 모습이 이 모든 상상을 깨웠다. 역무원이 승객들의 안전한 승하차를 확인한 후 발차 신호를 보내는 모습은 옛 모습 그대로다. 기차가 오고 기차가 떠나가는 곳, 태화강역에는 오늘도 사람이 오고 사람이 떠나가고, 또 세월이 오고 그리고 또 그렇게 세월이 가고 있는 모습 또한 예전과 조금도 다름이 없어 보였다.

오전 10시24분.

정동진발 기차는 서서히 태화강역을 빠져나간다. 기차를 보면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픈 이 마음, 어이면 늙으료. 대책 없는 생의 충동을 억누르고 돌아서는데 플랫폼에는 떠나가는 기차가 남겨 두고 간 한 줄기 바람이 얼굴에 와 닿는다. 바람의 질감이 좋다. 홍중표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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