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래가 가파르게 날숨을 뿜는다
신화로부터 멀리 와 버린
여기,
어디쯤 인가
관절마다 뙤약볕이 욱신거린다
화첩처럼 펼쳐진 골목 고래들 벽면을 오른다
등대처럼 서 있는 해바라기 벽화
바람이 불어도 미동이 없다
어제 오늘의 경계가 없는 지금
혹등고래가 헤엄을 치느라고

-중략-

벽화에서 아이들 소리가 들리고
들숨을 뿜은 나도 벽화 속으로 들어간다
평화구판장엔 막걸리 사발 오가고
관절 식힐 비구름이 신화의 언덕을 오를 때
고래를 타고 산마을을 내려간다

▲ 엄계옥 시인

신화 마을! 어감상 신화가 사는 곳이니 상상이 붕새 날개를 달았다. 우리는 늘 아날로그를 그리워한다. 그럴 때 장생포 신화리 벽화마을로 가보라고. 1960년대 민촌이 거기서 기다리고 있으니. 그 신화 입으로 들면 하늘이 바다다. 고래는 흰 파도를 헤집고 남녀는 온몸으로 바람을 가르며 자전거를 탄다. 이성에게 포박당한 감성이 단번에 풀릴 것이니. 클래식 연주를 실내에서 듣다가 야외에서 달빛과 같이 듣는 감동이랄까. 마을 전체가 신화를 입은 지붕 없는 미술관이다. 신화와 상상 속을 헤집다보면 딱딱하게 굳었던 마음이 나긋해져 있음을 느낄 것이니.

 

저작권자 © 경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