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을 직접 만들고 준비하는
종사원의 수고와 노동의 가치
폄하하거나 무시해서는 안돼

▲ 김상곤 울산광역시 감사관

밥을 먹는 것은 이제 한없이 사소한 일이다. 음식물 소비에 필요한 절실한 허기를 갖추지 못한 현대인의 식사는 더 이상 형식과 최소한의 예의조차 필요하지 않는 지극히 사소한 일이 되었다. 생명이 탄생한 후 외부세계와 관계하는 최초의 행동이 생존을 위한 영양분의 섭취라고 하지만 우리는 몸의 유전자가 간직하고 있는 이 아득한 의미를 기억하면서 음식을 대할 수는 없을 것이다. 또 자신이 먹고 있는 영양분의 재료들에 스며있는 기본적인 노동에 일일이 경의를 표하는 것도 힘들 것이다.

그러나 자기 앞에 놓인 밥상을 직접 만들어 온 사람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조차 잊어버린다면 문제는 달라진다. 아무리 시장의 논리 속에서 경쟁력을 키워온 사람이라 할지라도 자신이 먹는 밥을 만들어 주는 이들에게 밥값 외에 아무런 윤리적인 의미를 부여하지 못한다면 이 것은 결코 사소한 일이 아닐 것이다.

최근 어느 국회의원의 식당 조리원에 대한 무 개념적인 발언을 두고 여러 사람들이 날선 비판을 쏟아내면서 한 개인의 왜곡된 윤리의식을 질타하고 있지만 염려스러운 것은 이러한 행동이 우리사회에 만연한 공동체 윤리의 취약성을 드러내고 있지는 않는가 하는 것이다.

食事(식사), 먹는 일은 개인의 생존이나 사회의 유지에도 매우 중요한 일이다. 모든 역사는 사회의 질서와 개인의 윤리성을 담보하기 위해 삶의 과정을 처리하는 고유한 예를 만들어 왔다.

죽음을 처리하는 葬事(장사)에 필요한 예가 葬禮(장례)이고 혼인의 일을 처리하는 婚事(혼사)에 필요한 예가 婚禮(혼례) 이듯이 먹는 일에도 필요한 예가 있었다. 대부분의 종교에서는 먹는 일을 일정기간 금하거나 자제하는 것을 신에 대한 최고의 경배 표시로 의식화했다. 신에게 바칠 수 있는 가장 신성한 행동이 먹는 일을 함부로 하지 않는 것이다. 음식을 만드는 과정에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 이 시대의 젊은이들도 부모의 제사상에 타인의 손으로 만들어진 음식을 올리는 것에는 아직도 약간의 죄책감을 가지고 있지 않은가. 지금도 우리는 식사 자리에서 성호를 긋는 동료를 보면서 사소한 일에 대한 감사의식을 간접적으로 체험하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먹는 일, 특히 함께 먹는 일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가장 행복한 모습중의 하나로 평가돼 왔다.

동화 속의 성냥팔이 소녀가 추위에 떨면서 본 세상의 마지막 풍경이 창문 너머로 보이는 촛불 아래의 가족 식사였다. 어린이들의 아름다운 동화 속 이야기만이 아니다. 인간의 욕망보다 신의 말씀을 찾아내는 것이 최고의 선이였던 서구 중세시대에도 포도주를 곁들인 칠면조 식사는 문학 속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풍경이었다.

문화사학자 호이징아는 그의 저서 <중세의 가을>에서 이렇게 기술하고 있다. “행복과 불행의 모습이 너무나 뚜렷이 대비되고 그 거리가 가장 멀었던 가혹한 시대에 사람들이 꿈꾸는 따뜻한 불빛 아래에서의 식사와 환담은 우리가 결코 이해할 수 없는 정도의 심리적 강도와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지금은 먹는 일보다는 먹지 않거나 적게 먹는 방법과 기술을 더 의미있게 생각하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TV를 틀면 어느 한 곳에서는 무엇을 맛있게 먹을 것인가에 대한 해설이 예술평론 수준의 심미안을 동원해 진지하게 진행되고 있다. 또 한 곳에서는 어떻게 하면 건강과 미를 위해서 적게 먹을 것인가를 토론하는데 열을 올리고 있다. 어느 쪽도 먹는 일에 대한 정당한 문화적 가치 평가와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역사 속에서도 먹는 일이 이렇게 사소한 일로 취급되는 시대는 없었다. 먹는 일을 준비하는데 드는 수고와 노동으로부터의 해방이 그 노동에 대한 가치를 폄하하거나 무시할 수 있는 힘을 주는 것은 아닐 것이다. 사소한 일과 의미없는 일을 구별하지 못하면서 한 시대의 문화를 이야기하는 것은 참으로 주제넘은 행동임이 틀림없다. 예수가 이 땅에 구원하지 못한 하느님의 자녀들을 남겨두고 떠나면서 마지막 한 일이 12제자들과의 만찬이었다. 그 만찬을 정성들여 만들어 준 사람도 유명한 요리사가 아니라 밥하는 아주머니였을 것이다.

김상곤 울산광역시 감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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