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론화위 출범에 때늦은 우려지만
찬반 어느쪽 결정이든 모순 내포
국가적 어젠다에 대통령 혜안 기대

▲ 정명숙 논설위원실장

아무리 생각해도 모순이다. 신고리 5·6호기 건설 중단 여부를 결정하는 ‘공론화’ 말이다. 3개월 뒤를 상상해보자. 신고리 5·6호기 건설 중단이라는 결론이 나온다면 그것은 단순히 2기의 원전 건설중단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 에너지정책이 탈원전으로 결정되는 것이나 다름없다. 사회적 논의가 모두 생략된 채, 불과 3개월만에 국가에너지정책이 바뀌어 버리는 것이다. 반대로 신고리 5·6호기 계속건설이라는 결론이 나온다면 처음부터 의미 없는 공론화로 비용과 시간을 낭비하고 사회적 갈등만 양산했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후유증 수습도 만만찮다.

우리나라도 ‘탈원전’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가 필요한 시점인 건 분명하다. 어떤 결론을 얻더라고 우리 사회가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과제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신고리 5·6호기가 그 출발점이 돼서는 곤란하다. 신고리 5·6호기에 매몰돼 국가에너지정책의 변화라는 대형 어젠다를 국민적 공감대 없이 결정해 버리는 우(憂)를 범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쪽에선 원전이 절대적으로 안전하고 경제적인 에너지라며 신재생에너지는 대안이 될 수 없다고 단언한다. 다른 한쪽은 신재생에너지로 전환해도 충분히 에너지 수급이 가능하므로 불안한 원전을 포기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민주적 절차보다 옳고 그름에 대한 과학적 판단이 더 중요한 시점이다. 물론 오랜시간 치열한 논쟁을 통한 사회적 합의도 필요하다.

200년 로마평화를 실현했던 초대 황제 아우구스투스는 ‘천천히 서둘러라(Festina Lente)’고 했다. 국가에너지정책은 서둘러서 될 일이 아니다. 출발한 기차나 다름없는 신고리 5·6호기를 되돌리는 것에 집착하다가 자칫 국가적 어젠다를 소홀히 하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수치상으로 신고리 5·6호기의 공정률은 3분의1이 채 되지 않는 28.8%에 불과하다. 수조원의 비용이 들어가기 전에 되돌리는 것이 낫다는 판단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잘못된 계산이다. 공정률을 되돌리는데 또 그만큼의 비용과 공정이 들어가므로 현실적으로 50%를 넘어선 것으로 봐야 한다. 게다가 건설에 참여하는 수많은 기업과 부지를 제공한 주민들의 입장에서는 공정률 100%나 다름없다. 이미 전 재산이 달려 있는 상황이 된 사람이 한둘이 아니기 때문이다. 수만평 산천을 죄다 태우는 먼 산의 큰 불보다 발등의 작은 불이 더 뜨거운 법이다.

24일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원회가 출범했다. 공론화의 모순을 논하기엔 때늦은 감이 없지 않다. 하지만 이들이 3개월 뒤 내놓게 될 결론이 워낙 국가적으로 중차대한데다 지역사회에 미칠 후유증도 엄청날 것이기에 뒷북이라도 울리지 않을 수 없다.

문대통령도 그 심각성을 인식한 것 같다. 여야대표 간담회와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신고리 5·6호기는 원래 전면중단이 공약이었지만 밀어붙이지 않고 공론조사를 통해 결정하기로 합리적 선택을 했다”고 잇달아 밝혔다. 탈원전을 포기하는 것은 아니지만 신고리 5·6호기 건설 중단을 고집하지는 않겠다는 뜻은 분명해 보인다. 대선 공약의 진정성과 국가의 미래를 결정하는 정의는 다를 수 있다. 선거는 정치의 핵심이지만 당선 이후에야 비로소 진정한 정치를 하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기도 하다.

미국의 교육지도자이자 사회운동가인 파커 J 파머는 그의 저서 <비통한 자들을 위한 정치>에서 21세기에 부응하는 마음의 습관으로 ‘뻔뻔함’과 ‘겸손함’ 두 단어를 제시했다. 뻔뻔함이란 나에게 표출할 의견이 있고 그것을 발언할 권리가 있음을 아는 것이다. 겸손함이란 내가 아는 진리가 언제나 부분적이고 전혀 진리가 아닐 수도 있음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뻔뻔함’과 ‘겸손함’은 바로 정치의 씨줄과 날줄이다. 씨줄과 날줄이 정교하게 교차해야 제대로 천이 만들어진다. 탈원전이라는 국가적 어젠다를 두고 문대통령이 정치다운 정치를 보여주었으면 한다.

정명숙 논설위원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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